목차
- Key Takeaways
- 1. WebX 2026, ‘금융의 해’
- 2. 규제: 일본 금융 빅뱅에 타임라인이 생겼다
- 3. 스테이블코인: 50조엔을 쫓는 130억엔
- 4. AI 에이전트: 스테이블코인 결제의 99.3%는 이미 에이전트가 실행한다
- 5. RWA: 부동산 조각투자를 졸업하고 일본 국채와 상장 당일 주식으로
- 6. 시장 사이클: 개인은 떠났고, 기관은 남았다
- 7. 예측시장: 누군가에겐 가격발견, 누군가에겐 자금세탁
- 8. 보안: 양자 시한, 북한의 탈취, 그리고 워싱턴의 킬 스위치
- 9. 어돕션: Web3라는 말이 생소한 분야에서 Web3는 가장 잘 작동한다
- 10. 일본 시장에 대한 시사점
Key Takeaways
- WebX는 코인포스트(CoinPost)가 주최하는 아시아 최대 Web3 컨퍼런스로, 7월 13~14일 이틀간 도쿄에서 열렸다. 참가자 1만3000여명, 연사 약 300명, 참여 기업 150여개사가 4개 스테이지를 채웠다.
- 포필러스는 공식 리서치 파트너로 참가했으며, 본 글은 현장에서 확인한 내용을 컨퍼런스를 관통한 8개 주제로 정리한 것이다.
- 가상자산을 자금결제법에서 증권 법제인 금융상품거래법(FIEA)으로 편입하는 개정안이, 바로 그 법을 논의하는 세션이 진행되는 사이 참의원 소관 위원회를 통과했다.
- 행사 내내 무대를 가리지 않고 반복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앞으로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자산을 가장 많이 쓰는 주체는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JPYC 자체 집계 기준, 스테이블코인 결제의 99.3%는 이미 인간이 아닌 에이전트가 발생시키고 있다.
1. WebX 2026, ‘금융의 해’
돌이켜보면 WebX는 매년 그해 시장의 관심사를 고스란히 담아왔다. 2023년에는 NFT가, 2024년에는 ETF와 투자가, 2025년에는 디지털자산 트레저리(DAT)가 무대를 채웠다.
그리고 2026년, 주최 측은 올해를 ’금융의 해’로 이름 붙였다.

연사 면면만 봐도 과장이 아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개막 연설에 나섰고, 금융담당상을 겸하는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이 기조연설을 맡았다. 3대 메가뱅크와 도쿄증권거래소, 일본 금융청(JFSA) 국제 담당 국장, 블랙록, 프랭클린템플턴, 피델리티, 마스터카드, 비자, 스위프트(SWIFT), DTCC의 파트너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전 최고혁신책임자까지. 한때 이 업계를 독차지했던 거래소와 프로토콜 창업자들 옆에 전통 금융의 간판들이 나란히 섰다. 참가자는 1만3000명을 넘었고, 내년 행사는 지금보다 두 배 가까이 큰 도쿄 빅사이트로 자리를 옮긴다.
포필러스는 공식 리서치 파트너로 참가해 지난 2월 MoneyX 때와 마찬가지로 자체 리서치를 현장에서 발간, 배포했다. 당시 우리는 일본 시장에서 규제가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로부터 다섯 달이 지난 지금, WebX는 그 걸림돌이 해결된 시장에서 실제로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CRYL, Visionary, Binance, Limitless 4개 스테이지에 걸쳐 60개가 넘는 세션이 열린 만큼, 본 글에서는 가장 활발하게 논의된 8개 주제를 중심으로 현장을 정리한다.
2. 규제: 일본 금융 빅뱅에 타임라인이 생겼다

본 컨퍼런스에서 가장 자주 들린 문장은 “이번 주에 법이 통과된다(the law is passing this week)”였다. 그리고 실제로 통과됐다. FIEA 개정안은 개막 전에 중의원을 통과했고, 행사 이틀째에는 참의원 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가노 유조(Yuzo Kano) 비트플라이어홀딩스(bitFlyer Holdings) CEO는 Japan at a Crypto Crossroads — Inside the FIEA and Tax Reform Push 세션 도중 이 소식을 직접 전했고, 같은 날 오후 The Compliant DeFi Stack: Designing On-Chain Products for a Regulated World에서는 우시다 료스케(Ryosuke Ushida) 금융청 국제담당 국장이 표결이 “오늘 이뤄지고 있다(happening today)”고 말했다.
향후 일정은 정해져 있다. Japan at a Crypto Crossroads 패널에 오른 가와이 겐(Ken Kawai) 앤더슨모리도모쓰네(Anderson Mori & Tomotsune) 파트너 변호사에 따르면 개정법은 공포 후 1년 안에 시행된다. 새 규제 체계는 2027년 여름께 가동되고, 세제 개편은 이 법 개정과 연동돼 있어 최고 55% 종합과세에서 20.315% 분리과세로의 전환은 2028년 1월께 이뤄진다. ETF는 그 다음이다. 가노 CEO는 2028년 상장을 내다봤다. 가와이 변호사도 이 작업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거래가 한창 이뤄지고 있는 자산군 전체를 다른 규제 체계로 옮겨본 나라는 지금껏 없었다. 그의 말대로 “이것은 거대한 실험이다(this is a big experiment).”
일본이 여기까지 온 과정은 히로스에 노리유키(Noriyuki Hirosue) 비트뱅크(bitbank) 창업자 겸 CEO가 동일한 패널에서 들려줬다. 일본가상자산비즈니스협회(JCBA) 회장인 그는 수년간 자민당 세제조사회를 찾아다녔지만,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다.
사기 업자로 가득한 업계에 분리과세라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2년쯤 전이다. 20% 세율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증권 수준의 규제를 감수해야 얻을 수 있는 특권이라는 현실을 업계가 받아들이면서다. 히로스에 CEO는 당시의 합의를 “독만두를 먹는다(eat the poison manju)”는 말로 요약했다. 공시 의무도, 가상자산 역사상 처음인 내부자거래 규제도, 업계 대부분이 감당하기 힘든 컴플라이언스 비용도 모두 떠안는 대신, 제도권의 일원이라는 정당성을 얻는다는 얘기다. 그 비용은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동일한 패널에서 가노 CEO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일본의 인가 거래소 약 38곳 가운데 흑자를 내는 곳은 두세 곳뿐이며, FIEA 수준의 의무가 더해지면 부담은 더 커진다.
독만두를 삼킨 대가로 일본이 무엇을 얻는지는 하루 앞서 동일한 무대에서 숫자로 확인됐다. Japan’s Crypto ETF: What It Borrows from the U.S. — and Where It Goes Beyond에서 조 게이스케(Keisuke Jo) 블랙록재팬(BlackRock Japan) 매니징디렉터(Managing Director)가 소개한 미국의 선례다. 미국의 한 현물 ETF는 출시 약 2년 만에 운용자산 800억달러를 모았다. 일반적인 ETF라면 8년은 걸릴 규모다. 매수자의 75%는 그때까지 어떤 ETF도 사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었고, 그중 27%는 이후 다른 전통 ETF까지 사들였다. 가상자산이 ETF 시장을 잠식하기는커녕 오히려 신규 고객을 데려다준 셈이다.
이어 아사쿠라 도모야(Tomoya Asakura) SBI글로벌애셋매니지먼트(SBI Global Asset Management) CEO가 동일한 계산을 일본에 대입했다. 일본에는 가상자산 계좌가 1400만개, NISA 계좌가 2800만개 있고, 가계 금융자산은 2386조엔에 이른다. 그는 가상자산 ETF가 NISA와 iDeCo에 편입돼야 하며, 그러지 못하면 이 상품은 한때의 유행으로 끝난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내놓은 목표는 한층 구체적이었다. SBI가 “늦어도 2028년 1월(January 2028 at the latest)”에 첫 상장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입사원이 급여 일부를 JPYC로 받아 가상자산 ETF를 사고, 그 조부모는 동네 우체국에서 적립식으로 가상자산 펀드에 가입하는 2028년의 풍경을 그려 보였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오간 것은 아니다. 2023년 봄 본사를 통째로 도쿄로 옮기고도 아직 인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백팩(Backpack)의 캔 선(Can Sun) 공동창업자는 Global Exchanges, Local Trust: Why Global Leaders Are Betting on Japan에서 3년 넘게 이어지는 이 과정을 두고 “마음이 심약한 사람이 할 일은 결코 아니다(definitely not for the faint-hearted)”라고 했다. Will AI Kill DeFi? Japanese DeFi Founders Debate the Future에서는 기쿠치 마사(Masa Kikuchi) 시큐어드파이낸스(Secured Finance) 창업자가 이번 개정이 놓친 공백을 짚었다. 토큰을 넘기면 소유권도 함께 넘어가는 스위스 DLT법과 달리, 일본 법에는 토큰을 소유하고 이전한다는 것이 법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정의 자체가 없다. FIEA 개정은 가상자산을 증권 법제 안으로 들여놓았을 뿐, 토큰 그 자체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지는 못했다는 지적이다.
3. 스테이블코인: 50조엔을 쫓는 130억엔

일본에는 이제 인가받은 엔화 스테이블코인이 두 개 있다. 지난해 10월 나온 자금이동업 기반의 JPYC, 그리고 6월 24일 SBI신세이신탁은행을 통해 발행된 신탁형 JPYSC다. JPYSC는 JPYC의 발목을 잡는 100만엔 송금 한도를 적용받지 않으나, JPYSC는 나온 지 갓 3주 된 신생 코인이었다. 오카베 노리타카(Noritaka Okabe) JPYC CEO, 곤도 도모히코(Tomohiko Kondo) SBI VC트레이드(SBI VC Trade) 사장, 와타나베 소타(Sota Watanabe) 스타테일그룹(Startale Group) CEO를 한자리에 모은 둘째 날 The Dawn of Yen Stablecoins: JPYC × JPYSC Special Session은 컨퍼런스를 통틀어 가장 밀도 높은 30분이었다.
현실은 냉정하다. 두 엔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잔액은 합쳐야 130억엔 수준인데,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약 50조엔에 달한다. 세계 외환 거래량의 5분의 1 가까이를 차지하는 통화가 온체인에서는 존재감이 없다시피 한 것이다. 곤도 사장은 아예 성공의 기준부터 다시 세우자고 했다. “1000억엔으로는 너무 작다(a hundred billion yen is too small)”며 1년 안에 1조엔을 목표로 제시했고, 내년 WebX 때는 이 자리 청중의 30%가 스테이블코인을 쓰고 있을 것이라는 데 걸겠다고 했다. 와타나베 CEO는 잔액이 아니라 속도를 보자는 쪽이었다. 일본이 따라잡아야 할 것은 미국 시장의 규모가 아니라 성장률이라는 주장이다.
이틀을 통틀어 가장 독창적인 주장은 오카베 CEO의 입에서 나왔다. 일본 국채 금리는 오르는데, 이를 받아줄 새로운 매수 주체는 마땅치 않다. 그의 논리는 여기서 출발한다. 미국에서는 준비금 규제 덕분에 스테이블코인이 팔릴수록 국채 수요가 늘어나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그 결과 발행사들이 어느새 미 단기국채의 최대 보유 주체 반열에 올랐다. 오카베 CEO는 동일한 구조가 일본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며 엔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일본 국채의 새로운 구조적 매수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공개적으로는 잘 이야기되지 않는(not talked about publicly much)”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발행 잔액이 1조엔에 이르는 순간 JPYC는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국채 시장의 큰손이 된다.
한편 이들 발행사를 받쳐줄 유통 인프라도 이례적인 속도로 깔리고 있다. 그 상당수가 첫날 패널 From Hype to Utility — Yen Stablecoins Take Over Payments, Remittance, and Treasury에서 공개됐다. 일본 최대 QR결제 게이트웨이 사업자인 넷스타즈(NETSTARS)는 컨퍼런스 첫날에 맞춰 전체 가맹점 70만곳에 ’StablecoinPay’를 내놨다. USDC, USDT, JPYC로 결제를 받고 가맹점에는 엔화로 정산해주는 서비스로, 수수료는 0.98%다. 카드·QR 결제의 3% 안팎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트라돔(TRADOM)은 지난 5월 일본 최초로 국경 간 스테이블코인 송금 서비스를 시작했다. 해외에서 스테이블코인을 받아 5~7분 만에 엔화 예금으로 바꿔주며, 송금 한도도 없다.
2025 오사카 엑스포 공식 지갑을 이어받아 이용자 115만명을 확보한 해시포트(HashPort)는 오는 9월 지갑을 Claude, ChatGPT, Gemini와 연동하겠다고 발표했다. 말로 지시하면 결제가 실행되는 구조다.
그 위에서는 3대 메가뱅크가 움직인다. 세 은행은 CRYL 스테이지의 Japan’s Three Megabanks on Tokenization and Crypto: Strategies for the Digital Finance Era에서 금융청 파일럿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는 공동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 추진을 재확인했다. 서클(Circle)의 얌 키 챈(Yam Ki Chan) 아시아태평양 총괄은 Next-Gen Payments: Stablecoins & Tokenized Deposits에서 체급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게 했다. 올해 1분기에만 약 26조달러어치 USDC 결제가 이뤄졌고, 일본 기업이 이제는 도쿄와 런던 사이에서 한 시간 안에 자금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았다. 수나이나 투테자(Sunayna Tuteja) 전 연준 최고혁신책임자는 The Future of Global Money Movement: Blockchain, Stablecoins, and the New Payments Stack에서 미국의 낙관론자들이 애써 피해 가는 한마디를 던졌다. “미국에는 스테이블코인이 해결해줄 문제가 없다(there is no problem in the US that stablecoins solve)”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의 쓸모는 미국 밖, 정확히 일본이 노리는 국경 간 결제와 정산 시장에 있다는 얘기다.
타룬 치트라(Tarun Chitra) 건틀렛(Gauntlet) 창업자는 TradFi Meets DeFi: The Next Generation of Financial Products에서 유로 스테이블코인이 왜 실패했는지를 조목조목 해부했다. 유로 스테이블코인은 입출금 비용이 달러 대비 10~15배에 달했고, 수요는 끝내 자생적으로 붙지 않았다. 그의 결론은 “유로는 2위가 되지 못할 것(the euro won’t be second place)”이라는 한마디였다.
이어진 발언은 청중이 가장 듣고 싶어 하던 말이었다. 수조엔의 자산이 1% 금리에 묶인 채 일본 안에 갇혀 있으며, 그래서 “일본이 분명히 다음 시장(Japan is clearly the next market)”이라는 것이다. 일본에 아첨할 이유가 없는 사람의 입에서 나왔기에 무게가 다른 말이었다.
남은 변수는 워싱턴이다. 미국의 GENIUS법은 달러 스테이블코인만 인정한다. JPYC와 JPYSC 두 진영 모두 엔화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규제 체계 안에서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문제야말로, 엔화가 글로벌 결제망을 갖느냐 내수용에 그치느냐를 가를 승부처라고 입을 모았다.
4. AI 에이전트: 스테이블코인 결제의 99.3%는 이미 에이전트가 실행한다

이번 행사에서 4개 스테이지를 가리지 않고 등장한 주장이 하나 있다. 온체인 화폐의 진짜 사용자는 결국 에이전트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예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올해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제 수치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첫날 오카베 노리타카 JPYC CEO와 호리에 다카후미(Takafumi Horie)가 함께 오른 The Day AI Manages Money — Reading the Turbulent Future of the Agent Economy에서 오카베 CEO는 스테이블코인 결제의 99.3%가 이미 사람이 아닌 에이전트에서 나오고 있으며, 사람이 매장에서 하는 결제는 나머지 0.7%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현재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은 하루 20조엔 안팎이다. 그가 내놓은 2035년 전망치는 하루 23.9경엔. 에이전트 간 거래가 사람의 거래보다 1만배가량 많아져야 나올 수 있는 숫자이며, 실제로 그는 에이전트 경제가 무르익으면 그 비율이 1만 대 1에 이를 것으로 봤다.
얏 시우(Yat Siu) 애니모카브랜즈(Animoca Brands) 공동창업자는 Beyond Human: Why Ownership Is the Defining Question of the Agentic AI Era에서 동일한 주장을 ’숫자’의 문제로 확장했다. 보통 사람에게 5년 뒤 AI 에이전트를 몇 개나 쓰겠느냐고 물으면 3~5개라는 답이 돌아오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일한 질문을 하면 200~300개라는 답이 나온다. 그가 세계 인구 80억명과 비교하며 에이전트 500억~1000억개를 ’보수적인 추정치’라고 말한 근거다. 인간이 더는 인터넷의 주된 사용자가 아닌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사람과 에이전트의 관계가 이미 쌍방향이 됐다는 증언이었다. 에이전트가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물리적 작업을 사람에게 돈을 주고 맡기는 사이트가 벌써 존재한다. 시우 본인의 리서치 에이전트는 온라인으로 구할 수 없는 책을 가져오라며 그를 도서관으로 보냈다고 한다. 에이전트가 자율적으로 움직이려면 돈이 필요한데 은행은 소프트웨어에 계좌를 열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스테이블코인이 에이전트의 기본 화폐가 된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실제로 그의 에이전트들은 사람이 결제 한 번 할 시간에 1000건의 초소액 거래를 처리한다.
이러한 전망이 인프라에 갖는 의미도 행사 곳곳에서 논의됐다. The Autonomous Economy: How Crypto, AI Agents, and Next-Gen Infrastructure Are Converging에서 박성모(Sungmo Park) 앤드리슨호로위츠(a16z) 아시아태평양 총괄은 블록체인은 쓰기 불편하다는 업계의 해묵은 고민을 정반대로 뒤집었다. “블록체인을 지금까지 인간이 써 왔을 뿐, 애초에 인간더러 쓰라고 만든 물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blockchain was used by humans, but I don’t think it was meant to be used by humans)”는 것이다. 사람이 읽을 수 없는 지갑 주소와 프로그래밍 가능한 돈은 인간에게는 최악의 인터페이스지만, 소프트웨어에는 더할 나위 없는 인터페이스라는 얘기다.
이사카 도모유키(Tomoyuki Isaka) 코인체크(Coincheck) 사장은 Beyond Investment: How Blockchain Is Reshaping Everyday Life에서 동일한 미래를 규제 준수의 관점에서 내다봤다. 고객확인(KYC)을 기본으로 삼아온 거래소들이 앞으로는 에이전트가 정말 그 고객을 대리하는지까지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 ’KYA(Know Your Agent)’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스터카드의 크리스티안 라우(Christian Rau)와 비자의 니신트 상가비(Nischint Sanghavi)도 각각 Beyond the Card: How Payment Giants Are Reimagining Retail with Stablecoins와 Stablecoins in Action: Reimagining Retail Payments Across Asia Pacific에서 이미 개발 중인 에이전트 인증 체계를 소개했다. 호리에는 앞서 소개한 The Day AI Manages Money에서 은행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탰다. 달러 예치금에 연 6%를 얹어주는 X-Pay가 그 예다. 수억명의 이용자를 거느린 플랫폼이 소비자 금융에 스테이블코인 수익 구조를 얹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는 것이다.
해당 논의를 투자의 언어로 정리한 것은 프랭클린 비(Franklin Bi) 판테라캐피털(Pantera Capital) GP였다. 그는 자신의 세션 Where Crypto Capital Is Flowing Next: Pantera’s View on the New Market Cycle에서 토큰화란 결국 기관이 스스로를 AI 에이전트가 읽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정의했다. 지난 20년간 소프트웨어 기업을 지켜준 해자, 즉 독점 데이터와 영업망과 락인 효과(lock-in effect)는 구매자 자신이 소프트웨어인 세상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남는 해자는 네트워크와 시장뿐인데, 공교롭게도 그 둘은 크립토 업계가 지난 10년간 쌓아온 밑천이다.
가장 차분한 조언은 오드리 탕(Audrey Tang) 대만 사이버대사에게서 나왔다. 원격으로 진행된 Fireside Chat with Audrey Tang에서 그는 한계를 두지 않는 위임은 자율이 아니라 방치라며, 지출 권한을 수학적 증명으로 묶는 에이전트 설계를 소개했다. 본인의 서명 없이는 에이전트가 정해진 한도를 한 푼도 넘길 수 없는 구조다. 오카베 CEO가 말한 규모로 에이전트 경제가 정말 온다면, 이런 통제 장치가 있느냐 없느냐가 ’경제’와 ’사고’를 가를 것이다.
5. RWA: 부동산 조각투자를 졸업하고 일본 국채와 상장 당일 주식으로

일본 토큰증권(ST) 시장은 올해로 5년차를 맞았다. How Far Can Security Tokens Go? — The Compounding Power of Secondary Trading, New Asset Classes, and Infrastructure 패널에서 공개된 성적표를 보자. 히라이 가즈마(Kazuma Hirai) 부스트리(BOOSTRY) CEO에 따르면 누적 발행액은 약 3500억엔, 토큰 수는 86개로 이 가운데 약 86%가 부동산 기반이다. 유통시장인 ODX의 START에는 그중 300억엔가량이 상장돼 있지만, 하루 거래대금은 수백만엔에 그친다. 부동산 조각투자로 개인 투자자에게 문을 연 것은 훌륭한 1막이었지만, 시장 구조만 놓고 보면 기초자산인 부동산만큼이나 거래가 돌지 않는 시장이다.
2막은 기관 시장이다. 그리고 그 막은 컨퍼런스 기간에 이미 올랐다. JGBs on Chain: How Blockchain Is Reshaping Japan’s Financial Infrastructure에서 패널들은 DTCC가 캔톤(Canton) 네트워크에서 준비해온 미 국채 토큰화 거래가 며칠 안에 실가동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전하는 한편, 일본 국채를 동일한 프로토콜에 올리는 구상을 공개했다. 겨냥하는 시장은 약 250조엔 규모의 일본 국채 레포 시장이다. 무대에 오른 한 연사의 추산으로는 세계 레포 시장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기업 재무 담당자가 왜 여기에 주목해야 하는지는 사와 노부유키(Nobuyuki Sawa) 다이와증권그룹(Daiwa Securities Group) 전무가 토큰증권 패널에서 실무자의 언어로 설명했다. 온체인 미 국채는 이미 하루 단위가 아니라 시간 단위의 레포(repo) 차입이 가능하고, 이자는 분 단위로 계산된다. 조달 비용이 획기적으로 낮아지는 동시에 실시간총액결제(RTGS)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여러 패널에서 ’일본판 BUIDL’로 불린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Sumitomo Mitsui Trust Bank)의 해외 설정 토큰화 머니마켓펀드(MMF)는 동일한 논리를 담보 시장으로 확장한 상품이다. 일본 국채 변동성이 커지며 시장 전반의 증거금 부담이 불어나는 지금, 시점도 절묘하다.
일본 금융당국이 새겨들어야 할 숫자는 고바야시 에이지(Eiji Kobayashi) 세큐리타이즈재팬(Securitize Japan) 대표가 The Road to a Trillion-Yen Market — Full-Scale Scenarios for RWA, MMF, and Tokenized Securities에서 내놨다. 컨설팅 업계 추산으로 2033년 글로벌 실물연계자산(RWA) 토큰화 시장은 약 3000조엔 규모로 커진다. 세계 자본시장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을 대입하면 일본 몫은 300조엔 안팎이어야 한다. 그는 이 숫자에 도달하지 못하면 “일본이 진다(Japan loses)”고 표현했다. 문제는 퍼블릭 체인 기준으로 일본의 현재 실적이 사실상 0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토큰증권은 모두 프라이빗 컨소시엄 체인 위에 있는데, 그는 이를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온체인 이전이 왜 필연인지는 프랭클린템플턴의 체탄 카르카니스(Chetan Karkhanis) 수석부사장이 The On-Chain Bond Market: How Tokenization Is Reshaping Fixed Income에서 숫자 하나로 보여줬다. 펀드 거래 5만건을 처리하는 데 기존 사무수탁 방식으로는 약 7만5000달러가 든다. 퍼블릭 블록체인에서는 1.13달러면 된다.
이러한 흐름이 하나로 모인 사례가 스페이스X다. 일본의 프라이빗 체인들이 세계 시장에서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도 이 사례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10년 만의 최대어로 꼽힌 이 IPO의 공모가가 6월에 확정되자, 상장 당일에만 최소 네 갈래의 서로 다른 경로로 온체인 거래가 가능했다. 그 경로를 만든 이들이 각자의 세션에서 뒷이야기를 풀었다.
온도(Ondo)는 토큰을 일주일 먼저 배포해두고 135단계짜리 출시 점검표를 돌린 끝에 나스닥 개장 5분 만에 거래를 열었다. 선라이즈(Sunrise)의 에드워드 주오(Edward Zuo) 운영총괄은 Interoperability Beyond Protocols & Markets: Connecting DeFi with Offchain Finance에서 토큰화 스페이스X 주식을 솔라나에 올린 경위를 소개했다. 첫 24시간에 현물 거래 5200만달러가 몰렸고, 기초시장이 문을 닫은 주말 동안 4000만달러가 더 거래됐다. 백팩의 캔 선은 Asia as a Crypto Powerhouse: Policy, Liquidity and Trust for Robust Growth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종착점을 제시했다. 실물 주식과 1대 1로 교환되고, 과세 없이 일반 증권사 계좌로 옮길 수 있는 토큰화 실주식이다.
이 모든 것의 바탕에 깔린 시장 구조의 원칙은 이안 드 보드(Ian De Bode) 온도파이낸스(Ondo Finance) CEO가 린 커페이(Kefei Lin) SBI온체인(SBI Onchain) 디렉터와 함께한 Building the Financial Rails of Tomorrow: A Strategic Vision with Ondo CEO Ian De Bode에서 설명했다. 온도는 토큰화 주식의 DEX 풀 조성을 일부러 하지 않는다. 풀에서 형성되는 가격이 본 시장 가격에서 이탈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DEX 풀 방식으로 출시한 경쟁사들에서는 투자자들이 아마존 주식을 거래소 가격보다 20% 비싸게 사는 일이 벌어졌다. “그 DEX 풀에 어떤 가격이 찍혀 있든, 그 가격은 틀린 가격이다(Whatever the price is in that DEX pool, that price is wrong).” 토큰은 나스닥 가격에 맞춰 발행되고 소각돼야 하며, 그러지 못하는 상품은 도태되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컨퍼런스 개막일, 온도와 SBI는 이 인프라를 일본 자산으로 확장하는 양해각서(MOU)를 발표했다. 두 회사가 명시한 목표는 온체인 엔 캐리 트레이드와 일본 주식 토큰화다.
새로운 자산 발행 경쟁에는 일본 기업도 뛰어들었다. 메타플래닛(Metaplanet)은 오쿠노 신페이(Shinpei Okuno) 자본시장 총괄이 Metaplanet’s Next Growth Strategy: How Bitcoin Treasury and Digital Credit Are Building a Japan-Born Financial Ecosystem에서 밝힌 기준으로 약 4만3000BTC를 보유하고 있다. 회사는 이 비트코인 자산을 담보로 연 4~6% 배당의 영구 우선주를 발행하고, 석 달씩 걸리는 일본의 배당 지급 절차를 건너뛰기 위해 JPYC로 토큰화 정산을 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지난 6월 통과된 법으로 내년 4월부터는 디지털 지방채도 발행할 수 있게 된다. Tokenizing Municipal Bonds: Can Blockchain Reshape Public Finance? 패널에서는 참고할 선례로 마루이(Marui)의 디지털 회사채가 언급됐다. 모집액의 20배가 넘는 청약이 몰린 사례다. 자산에서 담보로, 조달로, 이제는 공공 재정으로. 기존 자산을 포장만 하던 래퍼(wrapper)의 시대가 저물고, 대차대조표 자체가 체인 위로 올라오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6. 시장 사이클: 개인은 떠났고, 기관은 남았다

행사 기간 비트코인은 6만2000달러 안팎에서 거래됐다. 2025년 10월 고점의 딱 절반 수준인 데다, 둘째 날 아침에는 미국의 이란 재공습 소식까지 겹쳤다. Bitcoin Outlook: Top Analysts Break Down Price, Macro, and What Comes Next 패널은 하락의 원인을 정면으로 다뤘다. 관세 충격, 비트코인을 함께 끌어내린 금값 되돌림, 잇따른 거래소 해킹, 그리고 무엇보다 AI로 빠져나간 투기 자금이다. 스페이스X IPO 하나가 약 2조달러의 위험자산 수요를 빨아들였고, 그 뒤에는 OpenAI와 앤트로픽(Anthropic)의 상장이 줄 서 있다. 금리 전망은 인하에서 인상으로 뒤집혔다. 패널이 인용한 온체인 지표 어느 것을 봐도, 개인 투자자는 이미 시장을 떠났다.
기관은 떠나지 않았다.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가 하나 있다. 켄 도조(Ken Tojo) 블랙록재팬 ETF 프로덕트 총괄이 The Institutional Gateway: How Crypto ETFs Are Reshaping Finance에서 공개한 수치다. 비트코인이 고점 대비 약 50%, 이더리움이 약 60% 빠지는 동안, 블랙록 가상자산 ETF의 발행 좌수는 약 9% 줄어드는 데 그쳤다. 가격이 반토막 나도 보유자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올해 내내 물량을 던진 게 누구였든, 적어도 ETF로 들어온 기관 자금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톰 리(Tom Lee)도 Tom Lee MAVAN: Made in America VAlidator Network Workshop에서 바로 이 괴리에 주목했다. 투자심리가 바닥을 기는 동안에도 이더리움은 4월에 월간 트랜잭션 신기록을 썼고, 스테이킹 비중은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는 것이다. 프랭클린 비 판테라 GP는 Where Crypto Capital Is Flowing Next: Pantera’s View on the New Market Cycle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투자자답게 시세를 읽었다. 3차대전 우려 동일한 헤드라인에도 가상자산 가격이 더는 반응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팔 사람은 다 팔았다는 신호라는 진단이다. 그는 2년 전만 해도 상장사라고는 코인베이스 하나뿐이던 이 업계가 최근 12개월 사이 10건의 IPO를 해냈다는 점도 짚었다.
이 괴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는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다. 공식 참가도 하지 않은 이 거래소가 최소 8개 세션에서 언급됐다. 와타나베 CEO는 Why Hasn’t Crypto Changed the World Yet? 〜Reflecting on the Last Decade, Reimagining the Next〜와 Digital Finance, Unfiltered: Testa & Sota Watanabe on How Investing Actually Changes에서 거듭 하이퍼리퀴드를 소환했다. 직원 13명이 굴리는 거래소가 연 매출 약 1500억엔을 올리고, 벤처 투자를 한 번도 받지 않았으며, 이제는 나스닥 거래량의 10분의 1을 소화하면서 어떤 날은 그 턱밑까지 쫓아가고, 올해는 닛케이225 무기한 선물까지 상장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리 도쿠요(Tokuyou Li) SPEQETRA인베스트먼트리서치(SPEQETRA Investment Research) CEO가 The Autonomous Economy: How Crypto, AI Agents, and Next-Gen Infrastructure Are Converging에서 증언을 보탰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던 이 이야기는 이미 제도권의 현실이다. 전통 펀드매니저들이 월요일 아침 헤지 포지션을 정하려고 주말에 하이퍼리퀴드 시세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전쟁이 토요일에 터지면, 그 순간 원유가 거래되는 곳은 지구상에 거기뿐이기 때문이다.
와타나베 CEO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 인프라는 원래 이렇게 승리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나 AWS 쓴다”고 자랑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10년 뒤에는 블록체인을 쓰느냐고 물어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을 것(in ten years nobody will raise their hand when asked who uses blockchain)”이라며 “모두가 쓰고 있을 것이기 때문(everyone will be using it)”이라고 말했다.
패널들이 입을 모아 말한 이상적인 투자자의 모습을 실제로 보여준 사람은 테스타(Testa)였다. Digital Finance, Unfiltered 세션에서 그는 금, 미 국채와 함께 분산투자 차원에서 비트코인을 1억엔어치 가량 샀고, 지금은 평가손 상태지만 개의치 않는다고 털어놨다. 생선의 머리와 꼬리는 시장에 내주라는 오랜 격언도 곁들였다.
가장 먼 미래를 이야기한 사람은 곤도 도모히코 SBI VC트레이드 사장이었다. 그는 Why Hasn’t Crypto Changed the World Yet?에서 2030년이면 가상자산·스테이블코인·토큰화 자산이 일본 가계 금융자산 2400조엔의 10분의 1까지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100조엔이든 200조엔이든, 결국 가리키는 방향은 같다. 가격이 올라야만 확신이 서는 사람들은 시장을 떠났다. 인프라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들이 떠난 줄도 모른 채 일하고 있다.
7. 예측시장: 누군가에겐 가격발견, 누군가에겐 자금세탁

예측시장은 WebX에 두 번 등장했다. 그것도 서로의 논의를 반드시 들었어야 할, 전혀 다른 두 무대에서다.
첫 번째 무대의 주인공은 사카이 도요타카(Toyotaka Sakai) 게이오대 교수였다. 단독 기조강연 The Age of Prediction Markets: Bringing Collective Intelligence into the Real World에서 그는 이번 컨퍼런스를 통틀어 가장 대담한 주장을 내놨다. 예측시장은 대의민주주의, 주식회사, 명목화폐와 나란히 위대한 사회과학적 발명의 반열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떠받치는 논리는 여론조사 무용론이다. 설문 응답자에게는 진지하게 생각할 유인이 없고, 사회적으로 껄끄러운 속내는 숨기며, 여론조사는 전문가와 그 문제를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을 똑동일한 한 표로 센다.
시장은 이 세 가지 결함을 한꺼번에 고친다. 그가 인용한 오타비아니·쇠렌센(Ottaviani & Sørensen)의 아메리칸이코노믹리뷰(AER) 논문에 따르면 예측시장의 가격은 참가자 각자의 확신을 위험 감수 성향으로 가중평균한 값이다. 확실한 정보를 가진 소수가 설문조사에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가격을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의 제안은 기업을 향했다. 도박 규제를 피해 사내 포인트로 운영하는 기업 내부 예측시장은 나쁜 소식이 위로 올라가지 않는 조직에서 경보장치가 된다. ’이 프로젝트가 올해 안에 끝날까’라는 티켓이 15센트에 거래되고 있다면, 어느 부하 직원도 입 밖에 내지 못할 말을 시장이 이사회에 대신 해주는 셈이다.
시장 조작에 대한 경계선도 분명히 그었다.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결과에 베팅해서는 안 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놓고 열린 시장에 해협을 직접 닫을 수 있는 당사자를 들이면 안 되는 이유다. 마지막 한마디는 뼈 있는 농담이었다. 일본에서 폴리마켓(Polymarket)을 이용하면 온라인 도박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니, 그의 표현을 빌리면, 부디 하지 마시라.
두 번째 무대는 Preventing Crypto Misuse: Asset Tracing and Confiscation Frameworks 패널이었다. 준 라우(June Lau) 엘립틱(Elliptic) 아시아태평양 정책총괄은 금융범죄 분석가의 눈에 예측시장이 어떻게 보이는지 들려줬다. 그 수법은 이미 온체인에서 돌아가고 있다. 검은돈으로 비트코인을 사고, 비트코인을 USDT로 바꾸고, USDT를 바이너리 계약에 넣었다가 빼면, 반대편에서는 ’도박 수익금’이라는 깨끗하고 그럴듯한 자금 출처가 만들어져 나온다. 그의 요구는 구체적이었다.
규제당국은 이 플랫폼의 법적 성격부터 정하고, 거래소는 예측시장 관련 지갑 주소를 걸러내고, 각국이 제각각 대응하는 대신 FATF와 IOSCO가 대응 기준을 조율하고, 무조건 금지하는 대신 샌드박스로 다루라는 것이다. 실제로 Japan at a Crypto Crossroads — Inside the FIEA and Tax Reform Push 패널에 따르면 일본 거래소들은 예측시장으로 향하는 이체를 이미 업계 차원에서 조용히 차단하고 있다.
두 무대의 시각은 정반대지만, 양쪽 모두 부정하지 않을 사실이 하나 있다. 이 시장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이번 행사에서 나온 가장 선명한 증거는 와타나베 CEO가 Digital Finance, Unfiltered: Testa & Sota Watanabe on How Investing Actually Changes에서 소개한 장면이다. 스페이스X의 시초가는 나스닥이 열리기도 전에 하이퍼리퀴드의 상장 전 무기한 선물 시장에서 이미 형성돼 있었다. 미국이 불과 지난달 CFTC 체계를 통해 무기한 선물을 합법화했다는 사실도 동일한 방향을 가리킨다.
정리하면 일본은 지금, 예측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기조강연을 여는 나라인 동시에, 규제당국은 이 상품을 카지노 취급하고 범죄자들은 세탁기로 쓰는 나라다. 이 모순은 저절로 풀리지 않는다. 가격발견 기능은 살리되 세탁만 걸러내는 규칙을 누군가는 만들어야 하고, 그 규칙을 먼저 만드는 나라가 다른 모든 나라가 부러워할 정보 우위를 쥐게 된다.
8. 보안: 양자 시한, 북한의 탈취, 그리고 워싱턴의 킬 스위치

양자컴퓨터 세션은 Quantum Threat or Quantum Hype? The Crypto Industry’s Honest Assessment라는 제목 그대로, 누구도 안심시키지 않았다. 재팬오픈체인(Japan Open Chain)을 운영하는 곤도 히데카즈(Hidekazu Kondo) G.U.테크놀로지스(G.U. Technologies) CEO는 시간표가 앞당겨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IBM과 이화학연구소(RIKEN)의 오류정정 기술이 진전되면서 타원곡선 암호를 깨는 데 필요한 큐비트 수가 줄고 있고, 그가 보는 암호 붕괴 시점은 통설인 2035년보다 이른 2030년 전후까지 당겨졌다는 것이다.
반론도 있었다. 미쿠라 다이시(Taishi Mikura) 일본비트코인산업(Japan Bitcoin Industry) 연구원이 근거로 든 것은 하드웨어의 현실이다. 지난해 기준으로도 양자컴퓨터는 21이라는 숫자의 소인수분해조차 버거워했다는 것이다. 그가 기준으로 삼자는 것은 정책 시간표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2030년까지 현행 암호의 사용 중단을, 2035년까지 완전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부정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문제에 노출된 물량이 막대하다는 것, 그리고 그날이 오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이 기다린다는 것이다. 공개키가 노출된 구식 주소에 잠들어 있는 비트코인은 약 600만BTC에 이른다. 양자내성 서명은 지금보다 용량이 훨씬 커서, 그대로 도입하면 비트코인 처리 속도는 초당 약 7건에서 0.3건대로 주저앉는다. 그리고 사토시 나카모토의 보유분을 포함한 휴면 코인을 놓고 양자택일이 강제된다. 비트코인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자산 동결이냐, 아니면 국가급 해커의 탈취 방치냐. 곤도 CEO가 정리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코인 도난이 아니었다. 100조엔짜리 자산군의 가격이 한꺼번에 다시 매겨지는 것, 즉 가상자산 업계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위기라는 것이다.
북한은 전망할 필요조차 없는, 이미 진행 중인 위협이다. 우시다 료스케 금융청 국장은 The Compliant DeFi Stack: Designing On-Chain Products for a Regulated World에서 북한 연계 조직이 매년 수십억달러를 디파이 프로토콜에서 훔쳐 “미사일을 사들이고, 그 미사일은 일본을 향해 발사된다(to buy missiles, which are then launched toward Japan)”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일본의 무관용 자금세탁방지 기조를 이보다 잘 설명하는 문장은 어느 정책 보고서에도 없다.
그 배경이 되는 구조적 문제는 Preventing Crypto Misuse: Asset Tracing and Confiscation Frameworks 패널에서 드러났다. FATF 조사 기준으로 불법 디지털자산 자금의 약 84%가 이제 스테이블코인으로 움직이는데, 가상자산사업자를 인가하고 감독하는 나라는 전 세계 76곳에 그친다. 동일한 주에 벌어진 웃지 못할 상황도 도마에 올랐다. Japan at a Crypto Crossroads 패널에서 히로스에 CEO가 가노 CEO에게 공개적으로 시정을 촉구한 사안이다. 비트플라이어는 TRUST, 비트뱅크는 Sygna라는 서로 호환되지 않는 트래블룰 시스템을 쓰는 탓에, 일본을 대표하는 두 인가 거래소가 정작 자국 안에서 서로 코인을 보내지 못한다.
세 번째 위협은 동맹국에서 왔다. 미국의 수출 규제로 일본이 최첨단 AI 모델에 접근하지 못하게 된 이른바 ’미토스(Mythos) 사태’다. 기타오 요시타카(Yoshitaka Kitao) SBI홀딩스(SBI Holdings) 회장은 첫날 기조연설에서 이 사건의 교훈을 이렇게 정리했다. 해외 기술에 기댄 사업은, 남의 나라 정부가 언제든 끌 수 있는 스위치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호리에는 The Day AI Manages Money에서 동일한 이야기를 전투기에 빗댔다. 일본이 라이선스 생산으로 직접 만들고 뜯어고칠 수 있었던 F-15와, 일본이 그저 운용만 할 뿐인 블랙박스 F-35. 이제 동일한 구도가 AI 모델에, 나아가 달러로 표시된 금융 인프라 전반에 적용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캐럴 하우스(Carole House) 전 백악관 보좌관은 아시아 규제당국 라운드테이블 Digital Assets, Updates in Regulatory Regimes and the next growth areas for 2026 Onwards에서 이 불안이 기우가 아님을 미국의 입으로 확인해줬다. GENIUS법이 미처 풀지 못한 과제들을 열거한 그는, 감독받지 않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소규모 경제의 예금을 빨아들이는 ’아래로부터의 달러화(dollarization)’와 다르지 않다고 경고했다.
엔화 스테이블코인, 자국 AI, 양자내성 대비. 평소에는 별개의 정책으로 소개되는 사안들이지만, WebX 무대에서는 이 셋이 결국 하나의 위기의식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9. 어돕션: Web3라는 말이 생소한 분야에서 Web3는 가장 잘 작동한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Web3의 미래상을 가장 정확하게 그려 보인 사람은 프로토콜 창업자가 아니라 일본의 공무원이었다. Japan’s Social Infrastructure for the Next Decade: Energy Grids and Municipal DX on the Front Lines 패널에 오른 요시다 슈이치로(Shuichiro Yoshida) 경제산업성 프런티어추진실장의 말이다. 아무도 “인터넷을 쓴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인터넷이 그냥 거기 있기 때문이며, Web3의 성공 여부도 이 단어가 동일한 방식으로 사라지느냐로 판가름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아직 일부이긴 하지만 매우 구체적인 현장에서, 그 단어가 실제로 사라지고 있다.
컨퍼런스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실증 사례는 Japan’s Tokenized Deposit Moment: From Banking Infrastructure to National Policy 세션에서 나왔다. 다카이치 내각의 물가대책 지원금이 이시카와현에서는 홋코쿠은행(Hokkoku Bank)의 예금토큰(토큰화 예금) ’도치카(Tochika)’로만 지급됐다. 신청 절차도, 수급자 명부도 없었다. 마이넘버 정보와 연동된 디지털 신원 증명 덕분에, 현은 계좌를 연 주민에게 바로 다음 날 돈을 넣어줄 수 있었다.
마쓰다 잇케이(Ikkei Matsuda) 디지털플랫포머(Digital Platformer) CEO에 따르면 그 결과 약 23만개의 계좌가 만들어졌다. 현 수급 대상 인구의 약 30%다. 세븐일레븐에서 쓸 수 있고, 가맹점 수수료는 카드망의 3% 대비 0.5%에 불과하다. 노토 지진 때는 지갑에 잔액이 있던 피난민들이 현금을 챙기러 위험한 집으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됐다. 이 서비스가 어느 블록체인 위에서 돌아가는지 묻는 주민은 없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더 빨리 도착하는 지원금과 더 저렴한 결제 수단이라는 사실뿐이다.
비슷한 일은 게임 산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동일한 패널에서 소개된 픽트리(PicTree)는 도쿄전력 송배전 자회사와 DEA가 함께 만든 서비스로, 시민이 전신주 사진을 찍으면 포인트를 준다. 전신주 600만개와 전선 40만km의 점검 작업을 모바일 게임으로 바꾼 이 앱은 2년 만에 다운로드 15만건을 기록했고, 사진 300만장이 모였다. 포인트 가중치는 계절 따라 바뀐다. 봄에는 까마귀 둥지, 여름에는 전선을 타고 오르는 덩굴이다.
상위 플레이어는 누적 100만엔 넘게 벌었다. 가족들이 재미 삼아 시의 인프라를 점검하고 다니는 광경을 두고 오이즈미 준(Jun Oizumi) 하코다테 시장은 역사적인 순간에 가깝다고 했다. 다음 진출지는 태국이다.
일반 소비자와 만나는 최전선 이야기는 다시 Beyond Investment: How Blockchain Is Reshaping Everyday Life로 돌아간다. 이 세션에서 이사카 도모유키 코인체크 사장은 일본에서 진입 문턱이 가장 낮다고 꼽히는 서비스들의 공통점을 공개했다. 메루카리(Mercari)의 가상자산 서비스, 크레디세종(Credit Saison)의 포인트-비트코인 전환, KDDI 합작사의 포인트 운용이 모두 API를 통해 코인체크 인프라 위에서 돌아간다는 것이다. 포인트는 일본 이용자들이 부담 없이 변동성 자산에 익숙해지는 통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의 예측도 요시다 실장, 와타나베 CEO와 같았다. 블록체인과 Web3라는 단어는 머지않아 소비자의 언어에서 사라진다. 이시카와에서는 이미 사라졌다.
10. 일본 시장에 대한 시사점
이번 WebX 2026의 핵심 논의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병목은 법에서 인프라로 옮겨갔다. MoneyX 리포트에서 우리는 규제가 더는 제약이 아니라고 썼다. WebX는 이를 확인해주는 동시에 다음 제약들을 드러냈다. 서로 송금조차 되지 않는 양대 거래소, 토큰 소유권의 법적 정의가 없는 증권 법제, 발행 잔액은 수천억엔인데 하루 거래는 수백만엔에 그치는 토큰증권 시장이 그것이다. 2027년과 2028년이라는 날짜는 이제 확정됐다. 남은 질문은 일본 시장이 그 날짜를 감당할 준비가 됐느냐이며, 이는 입법이 아니라 실행(execution)의 문제다.
- 엔화 스테이블코인은 이제 유통(distribution)과 매크로의 문제다. 발행은 합법이 됐고, 가맹점 70만곳으로 이어지는 결제망도 깔렸다. 남은 변수는 100만엔 한도와 미국 규제 체계 안에서의 법적 인정, 그리고 메가뱅크 컨소시엄의 등판이다. 특히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일본 국채의 구조적 매수 세력으로 규정한 오카베 CEO의 시각은 곱씹을 가치가 있다. 재무성의 재정적 이해와 업계의 성장이 처음으로 동일한 방향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 AI 에이전트론은 이미 컨센서스다. 다만 여느 컨센서스와 달리, 숫자로 확인된다. 컨퍼런스의 모든 무대가 한목소리를 내면 보통은 투자 기회가 이미 사라진 뒤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 결제의 99.3%가 에이전트에서 나온다는 것은 내러티브가 아니라 실측치다. 규제당국과 메가뱅크, 발행사가 일제히 에이전트 고객을 염두에 두고 시스템을 설계하는 나라, 그리고 정치인이 에이전트 시대의 법 개정을 6~12개월 안에 하겠다고 공언한 나라는 일본뿐이다.
- 기관은 이번 하락장에서 팔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의 제도 개방 시점은 공교롭게도 시장의 바닥과 겹친다. 가격이 반토막 나는 동안 ETF 좌수는 한 자릿수 감소에 그쳤다. 이 보유 성향이 올해를 버텨낸다면, 2028년 세제 개편과 ETF 허용이 시행될 무렵 시장에는 팔 사람이 얼마 남지 않은 반면, 매수 대기 자금으로는 2386조엔의 가계 금융자산이 버티고 있을 것이다. 일본발 수요가 들어오는 시점과 글로벌 투자심리가 살아나는 시점의 어긋남이야말로, 컨퍼런스에서 누구도 콕 집어 말하지 않았지만 가장 흥미로운 트레이딩 셋업이라고 본다.
- 결국 모든 논의는 주권 문제로 수렴한다. 미토스 사태,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잠식, 양자컴퓨터의 시한, 북한의 탈취. 겉모습만 다를 뿐 뿌리는 하나인 불안이다. 스테이블코인과 AI, 금융 개혁을 향한 일본의 속도는 단순한 열의가 아니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스위치에 더는 기대지 않겠다는 국가적 결심으로 읽는 것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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