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Takeaways
- EVM의 규제형 토큰 표준은 하나의 규격으로 통합되기보다 기능별로 역할을 나누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ERC-1450, ERC-3643, ERC-7943 역시 서로 경쟁하는 표준이라기보다 발행과 신원, 집행, 통합을 각각 담당하는 보완적 구성요소에 가깝다.
- 체인별 차이는 규제 기능의 유무보다 이를 어느 레이어에서 구현하고 집행하는지에 있다. EVM은 자산별 스마트 컨트랙트에 높은 유연성을 남겨두는 반면, 솔라나와 무브(Move) 계열은 공통 토큰 프레임워크에, 스텔라루멘과 리플은 원장에, 칸톤과 아발란체 L1은 시장 및 네트워크 운영 레이어에 규제 기능을 배치한다.
- 향후 규제형 토큰 표준의 경쟁력은 지원하는 기능의 수보다는 규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동결과 강제이전, 전송 사전검증처럼 반복적으로 필요한 집행 기능은 표준화하되, 신원기관과 관할권, 보유 한도처럼 상품별로 달라지는 정책은 교체 가능한 모듈로 분리하는 컴플라이언스 스택이 보다 현실적인 접근 방향으로 보인다.
기관들에게 가장 익숙한 이더리움의 EVM만 보더라도, 규제형 토큰 표준들을 모두 살펴보면 비슷한 기능을 다루는 ERC가 여럿 존재한다. 각각은 전송 제한과 투자자 자격 확인, 동결과 강제이전, 분실 자산 복구처럼 공통된 기능을 제공하지만, 각 표준이 전제하는 법적 구조와 운영 주체는 조금씩 다르다.
EVM 외 다른 체인들도 토큰 프로그램(Token Program)이나 원장(ledger), 그리고 네트워크 레이어 단에 관련 기능을 추가하면서 규제형 자산을 구현하는 방법은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이는 규제형 토큰 표준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규제 자산에 필요한 기능을 하나의 규격으로 묶기 어렵다는 점도 보여준다. 증권의 법적 장부를 누가 관리하는지, 어떤 기관이 투자자의 자격을 증명하는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느 범위까지 자산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지는 상품과 관할권마다 다르다.
최근의 흐름은 하나의 완성형 표준으로 수렴하기보다는, 이러한 기능을 여러 레이어로 나누고 필요한 부분을 조합하는 방향에 가깝다.
1. EVM 내 규제형 토큰 표준들

초기의 표준은 전통 금융의 운영 구조를 토큰 계약 안에 직접 옮기려는 성격이 강했다. ERC-1450은 Registered Transfer Agent가 발행과 소각뿐 아니라 모든 이전을 실행하도록 하고, 일반 사용자의 transfer와 approve를 제한한다. 누가 법적 장부를 관리하고 법원 명령이나 키 분실에 대응할지가 명확하지만, 기존 DEX와 대출 프로토콜이 전제로 하는 자유로운 자산 이동과는 거리가 있다.
ERC-3643은 이러한 규제를 하나의 주체에 집중시키기보다 토큰, Identity Registry, Trusted Issuers Registry와 Compliance 모듈로 분리한다. 신뢰받는 기관이 발급한 KYC, 거주지, 그리고 적격투자자 여부 등의 정보(claim)를 기준으로 전송을 검증하고, 발행자는 투자자 수와 국가별 보유 한도 같은 규칙을 추가할 수 있다. 규칙을 교체하면서 ERC-20의 기본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여러 계약과 신원 발급자, 관리자 권한을 함께 운영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
보다 최근의 ERC-7943은 규제 정책 자체를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canSend, canReceive, canTransfer, 동결된 수량과 강제이전 기능을 공통 인터페이스로 제공해, 지갑과 거래소, 커스터디 및 디파이(DeFi) 서비스들이 서로 다른 규제형 자산을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게 한다. 즉, ERC-3643이 규제형 토큰을 만드는 스택이라면, ERC-7943은 여러 스택을 연결하는 통합 레이어(integration layer)에 가깝다. 최근 CMTAT 구현체가 ERC-7943 지원을 추가한 것도 이러한 최소 인터페이스가 기존 발행 표준 위에 덧붙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ERC-7518과 ERC-8047은 보다 구체적인 문제를 다룬다. ERC-7518은 ERC-1155의 partition마다 주식 종류와 관할권, 락업 조건을 다르게 적용하고, ERC-8047은 자산이 이전될 때 부모와 자식의 계보를 남겨 계정 전체가 아니라 특정 자금 흐름만 통제하려 한다. 전자는 하나의 자산 안에 존재하는 권리 차이를, 후자는 사고 이후의 추적과 집행 범위를 정교하게 만든다. 이들은 ERC-3643을 대체하는 단일 표준이라기보다 특정 규제 수요를 보완하는 모듈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2. 다른 체인들은 규제 기능을 어디에 두는가
솔라나(Solana)의 표준은 반복되는 토큰 기능을 하위 레이어에 두는 것이 특징이다. Transfer Hook과 Permanent Delegate, Confidential Transfer 같은 기능을 공통 토큰 확장 라이브러리(Token Extensions)에서 제공하고, Solana Attestation Service를 통해 KYC와 지역, 투자자 적격성 같은 오프체인 정보를 여러 애플리케이션이 재사용할 수 있게 한다. 발행자가 동일한 기능을 매번 새로 개발하고 감사할 필요가 적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확장 기능(extension function)을 지원하지 않는 지갑이나 프로토콜에서는 통합이 깨질 수 있다. 또한 Permanent Delegate처럼 강한 발행자 권한이 설정된 자산은 디파이가 별도의 상대방 위험으로 평가해야 한다.
스텔라(Stellar)와 리플(XRPL)은 승인과 동결, clawback을 원장 자산의 속성으로 제공한다. 이러한 통제가 송금과 네이티브 거래 기능에 일관되게 적용되므로 애플리케이션이 토큰 계약마다 다른 로직을 다시 해석할 필요가 적다. 스텔라는 Stellar Asset Contract를 통해 기존 원장 자산과 스마트 컨트랙트 환경의 연결을 확대하고 있고, 리플은 MPT를 중심으로 허가형 보유, 동결과 회수에 이어 프라이버시 기능까지 추가하려 한다. 다만 기능이 원장에 깊이 들어갈수록 새로운 규칙의 도입은 네트워크 업그레이드와 합의 절차에 의존하며, 통제 설정이 자산의 유동성과 활용 범위를 직접 제한할 수 있다.
수이(Sui)와 앱토스(Aptos)는 EVM의 접근 방식과 원장 내장형 체인의 접근 방식의 중간에 가깝다. 수이는 규제형 자산의 deny list와 global pause 권한을 Currency Registry에 기록하고, 앱토스는 Fungible Asset의 TransferRef를 통해 계정을 동결하거나 필요시 이를 우회할 수 있도록 한다. 주소 차단과 긴급 중단처럼 반복되는 집행 기능은 프레임워크가 제공하지만, 투자자 유형이나 국가별 보유 한도처럼 복잡한 정책은 별도의 Move 모듈이 담당한다. 공통 기능과 상품별 로직을 분리한다는 점에서 EVM이 향하고 있는 모듈형 구조와 가장 유사하다.
칸톤(Canton)은 규제의 범위를 토큰보다 시장 운영 전체로 확장한다. Canton의 CIP-56는 단순 잔액 이전을 넘어 참여자별 정보 공개, 수취인의 승인과 원자적 DvP를 표준화하며, 2026년에는 Token Standard V2가 별도 DevNet에서 시험되고 있다. 운영 일관성과 프라이버시는 높지만, 전용 신원 및 개발 환경을 사용해야 하므로 기존 퍼블릭체인의 유동성과 애플리케이션을 그대로 가져오기는 어렵다.
아발란체(Avalanche) L1은 규제형 토큰보다 규제된 시장 자체를 구축하는 선택지에 가깝다. 운영자는 트랜잭션 참여자와 컨트랙트 배포자를 allowlist로 제한하고, 검증인에게 KYC 및 AML이나 특정 라이선스 요건을 요구할 수 있다. Jumio와 Keyring 같은 신원 사업자를 txAllowlist에 연결하는 스택도 제공되고 있어 기관 전용 거래소나 결제망을 설계하기에는 유리하다. 반면 검증인과 업그레이드, 브리지, 유동성을 독립적으로 관리해야 하므로 개별 토큰을 기존 EVM에 발행하는 것보다 운영 부담이 크다.
3. 공통 집행 기능과 규제 정책의 분리
이러한 현황을 보면 규제 기능 전체를 네트워크에 내장하거나, 반대로 모든 기능을 개별 ERC에 맡기는 것 모두 뚜렷한 한계를 가진다. 전송 가능 여부의 사전 확인, 동결과 강제이전, 긴급 중단, 관리자 권한과 위험을 표시하는 메타데이터처럼 대부분의 규제 자산이 반복해서 필요로 하는 공통 집행 기능은 토큰 프레임워크나 원장, 또는 ERC-7943과 같은 최소 인터페이스에 가까이 둘수록 좋다. 그래야 발행자별 구현 편차와 감사 비용을 줄이고, 지갑과 거래소, 커스터디가 자산의 통제 권한을 일관되게 식별할 수 있다.
반면 어떤 신원기관을 신뢰할지, 어느 국가의 투자자를 허용할지, 투자자별 보유 한도와 락업을 어떻게 계산할지, 법적 명령을 누가 집행할지는 자산별 ERC나 별도의 모듈에 남겨두는 편이 적절하다. 이러한 규칙은 상품과 관할권마다 다르고 법률 변화에 맞춰 수정되어야 한다. 이를 네트워크의 기본 규칙으로 고정하면 업그레이드가 느려질 뿐 아니라 특정 금융시장에 맞춘 정책을 범용 체인의 기본값으로 만드는 문제가 생긴다.
요컨대, 결국 규제형 토큰 시장은 하나의 표준으로 수렴하기보다, 공통 집행 기능 위에 신원과 관할권, 상품별 규칙을 교체할 수 있는 컴플라이언스 스택(compliance stack)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더리움과 EVM은 정책의 유연성과 기존 유동성에서, 원장 내장형 체인은 집행의 일관성과 운영 단순성에서, 칸톤같은 목적형 네트워크는 프라이버시와 기관 워크플로우에서 각각 강점을 가진다.
향후 채택을 가르는 기준도 어느 표준이 더 많은 기능을 담았는지가 아닐 것이다. 규제 정책이 바뀌더라도 자산을 다시 발행하거나 지갑과 거래소, 커스터디를 처음부터 다시 연결하지 않아도 되는지, 그리고 강한 통제 권한을 외부 참여자가 얼마나 명확하게 발견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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