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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컴퓨트, 기준 가격이 없는 원자재
컴퓨트 마켓은 최근 크립토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장 중 하나다. 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은 GPU 연산 시간, 즉 GPU 1개를 1시간 빌려 쓰는 단위(GPU-hour)다. 대규모 언어모델을 학습시키고 추론을 돌리려면 방대한 연산력이 필요한데, 여기에 필요한 자원이 바로 엔비디아 H100, B200 같은 데이터센터용 GPU다.
따라서 AI 기업에게는 칩을 직접 사든, 클라우드에서 빌리든 이 연산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원유가 운송과 제조의 원가를 정하듯, GPU 연산 시간이 AI 산업 전체의 비용 구조를 결정하는 투입재가 된 양상이다.
그러나 컴퓨트는 여느 원자재와 다른 점이 많다. 핵심적으로 저장이 불가능한데, 오늘 남은 GPU 시간은 내일로 이월되지 않고 사라진다. 그래서 데이터센터는 매시간 임대 수익을 얻고 개발사는 매시간 비용을 치르며, 가격 익스포저도 24시간 끊기지 않는다.
가격 형성도 불투명하다. CFTC가 인용한 추정치에 따르면 연간 판매되는 컴퓨트 서비스 규모는 4300억~1조 3000억 달러에 달하지만, 가격은 장기 예약 계약과 개별 협상 안에서 대부분 비공개로 정해져 왔으며 모두가 동일하게 참조하는 기준 가격도 없는 상황이다.
또한, 무엇보다 가격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관리하기 어렵다. 온라인 마켓플레이스의 H100 임대료는 시간당 2.50~3.19달러에서 1년 뒤 1.92~2.00달러로 내려왔다. 대출로 칩을 미리 샀던 데이터센터와 대출 기관은 임대료 하락에, 컴퓨트를 빌린 개발사는 임대료 상승에 노출되어 있지만, 모두 이를 헤지할 상장 상품이 없었다.
2. 1년 사이, 규제 선물보다 먼저 형성된 무기한 선물
잠재적인 수요에 힘입어, 올해 들어서는 컴퓨트 시장에 파생상품이 빠르게 붙기 시작했다. CME는 8월 H100, B200 임대료 지수 기반 선물의 상장 승인을 CFTC에 신청했고, ICE도 GPU 선물 출시를 발표했다. CFTC는 같은 달 컴퓨트 파생상품에 대한 공개 의견을 요청했다.
그러나 CME 상품은 아직 상장 전이다. CFTC가 심사 기간을 11월 9일까지 연장했으며, 상장은 그 뒤에 정해질 예정이다. 그 사이 실제 거래는 무기한 선물에서 먼저 시작됐다. 이미 인젝티브(Injective)는 2025년 8월 H100 임대료 무기한 선물을 출시했으며, 트레이드XYZ(trade[XYZ])도 H100 무기한 선물을 상장했다.
규제 논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하이퍼리퀴드 정책 센터(Hyperliquid Policy Center, HPC)는 10월 20일 CFTC에 컴퓨트 무기한 선물의 미국 상장을 요청했다. 매시간 발생하고 만기가 없는 임대 수익과 비용에는 롤오버가 필요 없는 무기한 선물이 적합하다는 논리다. 이처럼 규제 선물이 상장되기 전인 지금, 컴퓨트는 처음부터 온체인에서 태어나는 원자재 시장이 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3. 인젝티브 SICI: GPU 5종 컴퓨트 지수

Source: Injective
인젝티브는 AI 관련 시장에 가장 빠르게 움직여온 플레이어 중 하나다. 2025년 1월 AI 관련 토큰과 주식을 섞은 AIX 지수, 8월 H100 임대료, 10월 오픈AI(OpenAI)와 앤트로픽(Anthropic) 등의 프리IPO 무기한 선물을 상장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26일, 기존의 단일 칩 시장을 5종 칩 바스켓으로 확대한 슈퍼 인텔리전스 컴퓨트 인덱스(Super Intelligence Compute Index, SICI)를 메인넷에 출시했다. 다음 날에는 SICI를 기초자산으로 한 온체인 옵션도 공개했다.

SICI는 엔비디아 GPU 5종의 시간당 임대료를 고정 비중으로 합산한 지수다. 대형 모델 학습의 주력인 H100과 B200이 비중의 65%를 차지하고, 소비자용 카드인 RTX 4090도 소규모 추론 수요를 담기 위해 포함됐다. 또한 USDC 증거금에 최대 10배 레버리지를 지원하며, 지수 산출은 런던 소재 LO:TECH가 맡는다.
이러한 바스켓 지수는 트레이딩과 헤지 모두에 활용될 수 있다. 트레이더는 AI 수요 확대나 신형 칩 출시에 따른 임대료 방향을 보고 롱이나 숏 포지션을 잡을 수 있다. 헤지의 경우에는, 컴퓨트를 빌려 사용하는 개발사가 롱 포지션으로 임대료 상승에 따른 비용 증가를, GPU를 빌려주는 공급자가 숏 포지션으로 임대료 하락에 따른 수익 감소를 상쇄하는 식이다.
4. 컴퓨트의 헨리 허브(Henry Hub)가 될 수 있을까?
무기한 선물이 정규 시장의 기준 가격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등의 가능성은 꽤나 예전부터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주식이나 원유처럼 이미 거대한 유동성을 가진 정규 시장 앞에서 그 역할은 제한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GPU 임대료는 양상이 조금 다른데, 규제 거래소의 선물보다 온체인 무기한 선물이 1년 넘게 먼저 거래된 만큼, 온체인 가격이 기준 가격이 될 가능성도 다른 자산보다 크다.
돌이켜봐도, 1990년 NYMEX가 첫 천연가스 선물을 상장할 때, 만기 시 가스를 인도하는 장소를 루이지애나의 파이프라인 허브인 헨리 허브로 정했다. 이 계약에 거래가 집중되며 헨리 허브 가격은 미국 천연가스의 기준 가격이 됐다.
이렇듯 컴퓨트에서도 유동성이 처음 대규모로 축적되는 계약의 지수가 현물 거래의 기준으로 굳어질 수 있다. 물론 CME 만기 선물이 상장되고 미국 내 컴퓨트 무기한 선물까지 허용되면, 기관 물량은 규제 거래소를 향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전에 SICI가 유의미한 유동성을 모으고 AI 컴퓨트 가격 전반을 대표하는 지표로 자리 잡는다면, 칩별 규제 선물과 나란히 온체인 기준 가격으로 활용되는 미래를 요원하게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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