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기금을 빌더들에게 분배하는 행위는 단순한 자선사업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생태계 전체를 부양하기 위한 명확한 전략적 투자다. 가장 일차적으로는 지원을 받은 프로젝트가 성장할수록 온체인 활동이 활성화되고, 체인의 수익 기반(ex)수수료)도 함께 확대된다. 나아가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거점으로 또 다른 서비스와 유저가 파생되면서 생태계는 비선형적으로 확장하며 안정성을 갖춘다. 만약 해당 프로젝트가 새로운 패러다임까지 제시한다면, 체인은 그 패러다임을 탄생시킨 혁신의 발원지로서 상징적인 지위와 주목을 얻게 된다(ex) M2E시절의 StepN).
하지만 이러한 본래의 목적은 바운티 헌터와 체리피커의 난입으로 상당 부분 퇴색했다. 장기적으로 생태계에 기여할 빌더를 발굴하려는 취지와 달리, 실제로는 단발성 상금만을 노린 프로젝트로 자금이 흘러 들어가는 일이 흔해졌기 때문이다. 수상 직후 몇 달, 심지어 며칠 만에 방치되거나 사라지는 악순환도 반복된다. 블록체인 극초기에는 해커톤 참여 자체가 장기적 기여 의지와 함께했으나, 생태계가 정착하고 행사가 정례화되면서 이제 많은 참여자에게 해커톤 수상은 생태계 진입을 알리는 출발점이 아니라, 상금을 챙겨 떠나는 종착점이 되어버렸다.
2022년 이후 막대한 상금이 배분된 수많은 해커톤 수상작 중, 지금까지 살아남아 생태계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은 프로젝트는 과연 얼마나 될까?
이 문제는 블록체인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모든 분야의 해커톤이 비슷한 한계에 직면해 있다. 특히 AI 도구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전문 개발 지식이 부족한 개인조차 개념증명 수준의 제품을 손쉽게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단기간에 결과물을 도출하는 능력만으로는 팀의 지속 가능성이나 기여 가능성을 판별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렇게 기존 해커톤의 선별 기능이 무력화되면서, 이 한계를 메우기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해커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온보딩 중심에서 딜소싱 체제로의 전환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자금 구조다. 과거 해커톤이 대규모 상금 풀을 한 번에 배분하는 행사에 가까웠다면, 최근에는 상금 규모를 줄이는 대신 선별한 팀에 초기 투자를 집행하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심사 기준도 기술 데모의 완성도와 스폰서 트랙 적합성에서 시장 파급력, 사업성, 팀의 실행 역량으로 확장되었으며, 이에 따라 참여 대상도 개인 해커에서 스타트업 창업자와 프리시드 단계의 팀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솔라나의 콜로세움(@colosseum)과 베이스의 베이스 배치스(Base Batches)다.
솔라나는 이러한 움직임을 먼저 보여준 훌룡한 사례다. 2020년 첫 온라인 해커톤부터 2023년 하이퍼드라이브(Hyperdrive)까지 해커톤을 내부적으로 운영하였지만, 2024년부터 내부 운영을 종료하고 독립 조직인 콜로세움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같은 해 3월 르네상스(Renaissance)를 시작으로 해커톤과 액셀러레이터, 벤처펀드를 하나의 파이프라인으로 묶었다. 현재 8주 구조로 진행되는 콜로세움은, 해커톤 수상팀 가운데 최종 선발된 팀에게 25만 달러의 프리시드 투자를 집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콜로세움은 2025년 해커톤 사이에도 참가자가 원하는 시점에 4주 개발 스프린트를 시작할 수 있는 상시형 프로그램 이터널(Eternal)을 추가하였으며, 2026년 프런티어(Frontier)에서는 기존 트랙과 스폰서 바운티를 전면 삭제하고, 제품이 솔라나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중심으로 팀을 평가했다. 단기간의 제품 완성도에 집착하기보다, 일정 기간 팀이 보여주는 실행 속도와 사업화 가능성을 다각도로 검증하는 '인큐베이터' 구조로 완전한 체질 개선을 이뤄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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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의 변화는 보다 노골적이다. 먼저 2025년 베이스 배치스 001은 글로벌 장기형 해커톤으로 출발했다. 77개 결선 팀이 멘토링과 데모데이를 거쳤고, 이 가운데 40개 팀에 총 100만 달러 이상의 자금이 배분됐다. 즉 해커톤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결선팀을 추가로 검증하고, 그중 일부에만 자금을 배분하는 선별 구조를 통해 바운티 헌터들을 가려내는 구조로 진행하였다.
002에서는 초기 팀을 위한 해커톤형 빌더 트랙을 유지하는 한편, 이미 제품을 만들고 투자 유치에 나선 팀을 위한 스타트업 트랙을 신설하여, 해커톤과 액셀러레이터가 공존하는 과도기적 구조를 이루었다.
'003'에 이르러서는 공식 프로그램 구조에서 해커톤 단계가 전면 제거되었다. 1,175개 지원팀 중 120여 개 팀을 면접한 뒤, 최종 선발된 12개 팀을 대상으로 7주간의 가상 액셀러레이팅과 샌프란시스코 데모데이를 연계하는 구조로 전환했다. 선발 기준 역시 창업자-시장 적합성, 초기 시장 반응, 문제 정의의 명확성과 팀의 실행 속도 등 철저히 VC 투자 심사에 가까운 항목들로 재편되었다. 이제 베이스 배치스는 단발성 해커톤이라기보다, 유망한 초기 창업팀을 발굴해 투자 가능한 회사로 압축해 내는 액셀러레이터로 변했다. 이러한 흐름을 이은 '베이스 배치스 004' 역시 동일한 기조 아래 현재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다.

Source: X(@jessepollak)
종합하자면, 오늘날의 해커톤은 단발성 행사에서 벗어나 유망한 창업팀을 발굴하고 육성·투자하는 '딜소싱 파이프라인의 입구'로 거듭났다. 개발자 온보딩과 기술 실험을 목적으로 하는 전통적 해커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생태계의 핵심 자본 배분 수단이라는 지위는 빠르게 딜소싱형 프로그램으로 넘어가고 있다.
특히 심사 및 육성 과정에서 창업자의 신원 검증과 다각도의 사후 검증 절차가 도입되면서, 과거 해커톤 출품작의 고질적 폐해였던 러그풀(Rug pull) 리스크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프로젝트의 신뢰도가 크게 향상됨에 따라, 그동안 해커톤 결과물에 냉담했던 일반 유저와 소비자들 역시 다시금 출품작에 실질적인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결국 생태계가 원하는 것은 단순 KPI 충족을 위한 무의미한 제출작 수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업을 이어갈 실력 있는 창업팀이다. 장기적인 기여 가능성이 검증되지 않은 프로젝트에 상금만 분배하는 자선사업을 더 이상 지속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기관향과 AI 및 에이전트 섹터의 주류화
해커톤이 딜소싱 파이프라인으로 재편됨과 동시에, 빌더들이 해결하려는 문제 또한 또한 달라졌다.

본 분석은 2023년 1월부터 2026년 8월까지 20개 생태계, 88개 글로벌 Web3 해커톤에서 수집한 25,010건의 프로젝트 데이터를 바탕으로 테마 편향을 최소화하여 연도별 섹터 변화를 정밀 추적하였음
연도별 제출 트렌드 변화:
- 2023년 (인프라 및 신뢰 기반 구축): 온체인 금융 작동을 위한 프로토콜, 보안, 개발 인프라 중심 프로젝트가 대다수를 차지
- 2024년 (사용자 접점 컨슈머 앱): 시장 분위기 반전에 힘입어 게임, 소셜, 크리에이터 등 실질적인 사용자 경험(UX)에 집중한 온체인 앱이 급증
- 2025년~2026년 (제도화 및 디파이 재부상): 기관 진입 및 제도화 흐름에 따라 디파이, 스테이블코인, 자산 토큰화 관련 프로젝트가 늘어났으며, 2026년 또한 해당 섹터가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함
또한 눈에 띄는 점은, 2023년부터 지속 성장을 거듭한 AI 및 에이전트 섹터가 2026년 들어 점유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글로벌 AI 인프라의 발전과 패러다임 전환이 가져온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지만, 특히 페이먼트와 커머스 분야의 동반 성장을 고려할 때 AI&에이전트의 점유율은 향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AI 기술의 발전으로 단순 개념 검증(PoC) 수준의 결과물을 만드는 일은 과거보다 훨씬 용이해졌으며, 특히 AI&에이전트 분야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도드라진다. 따라서 해커톤 참가자들이 집중해야 할 본질은 단순 구현을 넘어서 AI 에이전트를 실제 온체인 거래 및 결제와 깊이 연동하여,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트랜잭션을 유의미하게 발생시킬 수 있는가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열정적으로 프로덕트를 만들어도, 결국 ‘AI 슬롭(Slop)으로 점철된 무명의 제출물 #N’으로 남게 될 것이다.
지원자는 ‘체인 가치 귀속 구조’를 생각해야 한다.
딜소싱형 해커톤이 바운티 헌터를 선별하는 데는 유효하지만, 프로젝트의 성공이 곧 체인의 성공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 벤처펀드는 기업 가치가 상승해 회수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체인은 프로젝트가 해당 네트워크에 지속적인 트랜잭션과 유동성을 남겨야만 투자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초기 투자 단계에서는 자금을 집행하는 체인이 주도권을 쥐지만 프로젝트가 성장할수록 상황은 바뀌기 마련이다. 유저를 확보한 프로젝트가 멀티체인 확장을 도모하면서 최초 지원 생태계와의 밀착도는 약해지고, 오히려 체인이 프로젝트의 눈치를 보는 주도권 역전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결국 체인 생태계가 진정으로 열망하는 것은 단순한 '우수 프로젝트'가 아니라, '성장할수록 자신의 체인에 인과적으로 가치와 수요를 축적하는 구조를 가진 프로젝트'다.
AI의 발전으로 개발 진입장벽이 급격히 낮아진 지금, 빌더가 바로 이 '체인 가치 귀속 구조'를 깊이 고민하고 프로젝트를 설계한다면 양산형 제출물 사이에서 압도적인 차별성을 확보해 생태계의 선택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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