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의 영광
지금 한국 크립토 시장은 해외 프로토콜들 관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물론, 최근 긴 하락장 동안 업비트, 빗썸을 위시한 거래소들의 거래량이 급감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시장의 센티먼트가 바뀌면서 거래량이 단기간에 2.5-3배나 반등하는 등, 크립토 시장에서 리테일 투자자들의 유동성은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시장이 아닌 산업을 보면 한국 크립토 생태계가 과거에 비해 매력도가 상당히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2021년 상승장에 한국 크립토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그 입지가 대단했다. 탄탄한 투자자층과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L1, 디파이, P2E, NFT, 인프라, 지갑 등 수 많은 기업과 프로젝트들이 등장하고 활동했다.
하지만 2022년 테라가 붕괴하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극단으로 치닫는 온체인
한국 크립토 산업이 주춤하는 동안 글로벌 블록체인 산업의 양상은 다소 신기하게 흘러갔다.
BTC 가격은 2021년 고점보다 2025년 고점이 거의 2배에 가까운 수치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2021-2022년에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주었던 온체인 네이티브 프로덕트들은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시장은 분명 커진 것이 맞는데, 그럼 도대체 어떤 프로덕트들이 수혜를 받은 것일까? 정답은 투기적 수요가 존재하는 곳과 실물 경제와 연결된 곳이다.

최근 시장이 저점 부근에 있을 때, YoY로 통계를 살펴보면, 시장이 침체됨에 따라 DeFi TVL, DEX/CEX 현물 거래량, LST TVL, NFT 거래량, 크립토 펀딩 딜 카운트 등의 수치가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과거 상승장의 영광을 이끌었던 온체인 네이티브한 프로덕트들이, 시장의 벤치마크라고 할 수 있는 BTC 가격의 하락폭과 비교해도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이렇게 쉽지 않은 시장 상황 속에서 신기하게도 폭발적으로 성장한 섹터들이 존재한다. 바로 투기적 수요에 힘입어 성장한 무기한 선물(perps), 예측 시장(prediction market)과 실물 경제와 연결되는 스테이블코인과 RWA이다.
즉, 이번 사이클에서도 블록체인 산업은 분명 성장했다. 다만 이 성장이 투기적 수요와 실물 경제 연결이라는 양 극단에서 바벨 모양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뒤쳐지는 한국 블록체인 산업
무기한 선물, 예측 시장, 스테이블코인, RWA. 이번 사이클에 글로벌 블록체인 산업에서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한 4개의 섹터이다.
그렇다면 한국 블록체인 산업은 어떨까? 이 섹터들 중 몇 개나 한국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정답은 0개이다.
현재 한국 블록체인 산업에서는 위 4개 섹터에 해당하는 서비스를 합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
- 무기한 선물: 한국에 무기한 선물을 금지하는 법은 없다. 다만, 한국 금융위(FSC)는 크립토 기반의 신용공여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현행 한국 법체계에서 크립토 파생상품을 국내에서 정식으로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 예측 시장: 한국에서 예측시장은 불법 도박 쪽으로 판단되고 있다. 최근에는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가 폴리마켓의 한국 접속차단을 시행하기도 했다.
- 스테이블코인: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를 포함하는 디지털 자산 기본법(DABA)은 계속 지연되고 있다. 현재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유통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 RWA: 한국에는 STO 프레임워크가 존재하지만, 이는 조각투자와 관련이 깊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말하는 RWA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 현재 RWA와 관련된 규제 프레임워크는 없으며, 최근에 국내 증권을 기초로 해외에서 발행된 토큰을 해외 투자자에게만 판매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자증권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기는 했으나, 여전히 한국 기관 투자자가 RWA에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무기한 선물은 크립토 시장이 만들어낸 거래구조의 혁신이다. 싱가포르 SGX는 BTC, ETH 무기한 선물을 출시했고, CFTC는 KalshiEX의 BTC 무기한 선물을 승인했다.
예측 시장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거래할 수 있는 트레이딩 인터페이스의 혁신이자, 최근에는 모든 것에 대한 헷징 베뉴 및 더 나아가 차세대 보험 상품으로까지 발전할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스테이블코인과 RWA는 이미 크립토 시장의 분위기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PMF를 찾은, 차세대 금융의 백엔드로 거듭나고 있다.
한국에선 이러한 혁신들이 못 일어나고 있다. 한국과 글로벌 시장의 격차는 역설적으로 2021년 때 보다 지금 훨씬 더 벌어졌다.
물론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규제 프레임워크가 없기는 하지만 금융 기관들은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준비하고 있고, RWA의 경우 해외에서 먼저 발행해보려는 시도가 있다.
한국은 규제 환경이 마련되었을 때 그 어떤 국가보다도 빠르게 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국가이다. 얼른 무기한 선물, 예측 시장, 스테이블코인, RWA 등과 관련된 규제 프레임워크가 갖추어져, 한국 블록체인 산업도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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