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더리움이 정말로 월드 컴퓨터라는 이름값을 하려면, 노드가 전 세계에 고루 분포되어 있어야 한다.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인프라의 근간인 밸리데이터 노드의 분포를 전체 대상과 프로페셔널 운영자 별도 두 가지 기준에서 살펴보자.
1. 전체 밸리데이터 대상
전체 밸리데이터 기준으로 봤을 때 미국 38.19%, 독일 13.04%. 두 나라만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상위 10개국 중 아시아는 싱가포르(3.15%) 하나뿐이다.
핀란드(3.98%)와 캐나다(3.9%)가 순위에 있는 것도 주목해볼 만한데, 이는 두 국가가 이더리움에 친화적이라기보다는 클라우드 호스팅이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독일과 핀란드에는 헤츠너(Hetzner)의 리전이 있고, 캐나다에는 OVH의 대형 리전이 있다. 헤츠너와 OVH는 블록체인 노드 운영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들이다. 실제로 호스팅 서비스의 분포를 보면 전체 밸리데이터의 6.5%가 헤츠너, 5.1%가 OVH에서 돌아가고 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전체 밸리데이터의 호스팅 분포에서 컴캐스트(Comcast) 5%, 버라이즌(Verizon) 3.1%, 스팩트럼(Spectrum) 2.7%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 가정용 ISP(Internet service provider)들로, 전체 밸리데이터의 10% 이상이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미국 가정에서 동작하는 홈 노드라는 뜻이다.

2. 프로페셔널 밸리데이터 대상
프로페셔널 밸리데이터의 데이터만 따로 계산하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 미국의 비중이 25.81%로 내려가고,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비중이 높아진다. 싱가포르 7.28%, 홍콩 6.44%, 일본 6.38%, 한국 4.59%. 네 곳을 합치면 약 24.7%다. 아시아에서 노드를 운영하는 프로페셔널 밸리데이터의 비중이 미국과 거의 유사한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이를 보면 기관 인프라가 전체 밸리데이터 노드에 비해 오히려 지리적으로 더 고르게 분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로페셔널 오퍼레이터에게도 미국과 유럽이 가장 싸고 편한 선택지라는 조건은 동일하다. 그럼에도 이들이 아시아에 노드를 둔 것은, 기관 고객의 관할권 요구든 레이턴시 분산 전략이든, 아시아 배치가 전략적 선택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3. 문제와 기회
남미와 중동, 아프리카의 경우 두 기준 모두에서 상위 10위 안에 이름이 없다. 그중 중동은 UAE를 중심으로 규제 프레임워크가 정비되고 거래소, 펀드, 커스터디 사업이 몰려들면서 산업의 중심축 하나로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프라 관점에서 중동은 여전히 변방이다. 자본과 산업은 들어오고 있지만 그 지역이 사용하는 네트워크의 물리적 기반은 여전히 유럽과 북미, 아시아에 있는 셈이다.
이더리움 합의 레이어의 P2P는 노드 밀도가 낮은 지역에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메시지를 늦게 받는 노드는 피어 스코어가 낮아지고, 스코어가 낮으면 전파의 중심에서 밀려나 더 늦게 받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지역 안의 노드 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문제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DAT 기업들의 대규모 스테이킹과 스테이킹 ETF가 미국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어서, 이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더리움이 정말로 전 세계에 걸친 정산 레이어, 월드 컴퓨터가 된다면, 각 지역의 기관들은 자국 관할권 안에서 돌아가는 스테이킹 인프라를 찾게 될 것이다. 중동, 남미, 아프리카의 밸리데이터 인프라를 먼저 선점한 운영자는 해당 지역의 기관과의 협상에서 대체재가 드문 위치에 설 가능성이 크다. 관할권 요구, 규제 대응, 레이턴시를 모두 현지에서 충족할 수 있는 사업자가 그 지역에 몇 없다면, 그것은 가격 경쟁이 아니라 선점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밸리데이터의 지리적 분포는 한 번 좋아지면 유지되는 상태가 아니다. 대형 오퍼레이터의 선택과 자본의 쏠림에 따라 격차는 언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다. 탈중앙화는 동사다. 지금의 상태가 어떻든, 네트워크가 지향점을 명확히 하고 그 방향으로 최선의 선택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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