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Key Takeaways
- 체인 선택은 기술 스택부터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블록체인이 필요한지, 퍼블릭과 프라이빗 중 어떤 신뢰 모델이 맞는지, 자체 구축과 외부 도입 중 무엇을 택할지, 어떤 스택을 사용할지, 규제상 가능한지를 순차적으로 판단하는 문제다.
- 블록체인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는 더 이상 참여자 간 상호불신에만 있지 않으며, 24/7 프로그래머블 결제, 증권 인도와 결제의 자동화, 자산군을 통합하는 백엔드 UX, 기존 인프라로 달성하기 어려운 감사가능성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 퍼블릭 체인 사용은 더 이상 발행자 통제권 포기를 의미하지 않으며, 기관들은 퍼블릭 체인 위에 자산을 배포하되 화이트리스트, 동결, 재발행, 전송 통제 권한을 스마트 컨트랙트 수준에서 유지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 글로벌 금융기관은 퍼블릭 체인이나 칸톤과 같은 기관 공용 네트워크로 이동하고 있으며, 핀테크와 페이먼트 기업은 멀티체인 배포나 결제 특화 자체 체인처럼 더 개방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다.
- 한국에서는 체인 전략이 규제에 크게 좌우되며, 스테이블코인은 은행 중심 발행 구조로, 토큰증권은 한국예탁결제원 연동 인프라로, 핀테크는 유통과 애플리케이션 레이어 또는 선택적 자체 체인 구축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

본 글은 포필러스와 판테라 캐피털이 공동 발간한 “한국 기관을 위한 블록체인 가이드북 2026” 보고서의 일부 내용을 발췌 및 재구성한 것입니다. 기업 및 기관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나머지 14개 핵심 주제는 보고서 전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개요: 체인 결정은 다섯 개의 순차적 분기로 구성된다
2025년을 지나며 기업들의 블록체인 도입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스트라이프(Stripe)는 2026년 3월 결제 특화 레이어1 체인 템포(Tempo)의 메인넷을 출시했고, JP모건은 2025년 11월 예금 토큰 JPMD를 베이스(Base)에 정식 전환한 뒤 2026년 1월 칸톤 네트워크(Canton Network)에서의 네이티브 발행을 발표했다. 골드만삭스와 BNY의 토큰화 MMF는 2025년 7월 칸톤 위에서 출범했고, 로빈후드는 2026년 초 자체 레이어2 퍼블릭 테스트넷을 가동하며 토큰화 주식 수를 2,000개 가까이 늘렸다. 핀테크, 금융기관, 페이먼트 기업 할 것 없이 블록체인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실무자가 마주하는 고민도 더 구체적이고 복잡해지고 있다.
블록체인 솔루션 구축을 검토하는 실무자가 가장 흔히 범하는 실수는 기술적 스택 선택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체인 수준의 의사결정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분기로 구성된다.
- 블록체인의 필요성
- 퍼블릭(public)/프라이빗(private) 신뢰 모델의 선택
- 자체 구축과 외부 도입 중에서의 선택
- 구체적 스택 선택
- 규제 환경 검토
특히 첫 번째 분기인 블록체인의 필요성은 필수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이 검증 기준은 지난 5년간 실질적으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복수의 조직이 상호불신하는 상황을 블록체인의 핵심 요건으로 삼았으나, 이 판별 기준만으로 분기를 규정하기에는 한계가 드러났다.
첫째, 상호불신이라는 전제가 쉽게 무너졌다. 컨소시엄이 형성되는 순간 거버넌스 구조가 만들어지고, 거기서 중앙화된 신뢰 지점이 다시 생겨났다. 둘째, 블록체인 인프라 자체가 성숙하면서 다음과 같은 새로운 범주의 경제적 효용이 구체화되었다.
- 24/7 프로그래머블 결제 요구: T+2, 영업일 제한, 시간대별 컷오프 등 전통 결제 인프라의 시간 제약이 비즈니스 가치의 병목이 되는 경우
- 증권 인도와 결제의 자동화: 증권 인도와 결제의 동시성이 중개 기관 체인을 거치지 않고 단일 트랜잭션으로 해소되어야 할 경제적 유인이 명확한 경우
- 심리스한 백엔드 UX 구축: 예금, 주식, 채권, 대출, 포인트, 디지털 자산 등 기존에 파편화되어있던 모든 종류의 자산과 활동을 하나의 백엔드에서 다루는 UX 개선이 필요한 경우
- 기존 인프라로 달성 불가능한 감사가능성: 온체인 투명성 자체가 규제 준수 비용을 낮추거나 신뢰 비용을 줄이는 경우
퍼블릭과 프라이빗 사이의 선택 기준 역시 전통적 기준과 현재의 기준이 상이하다. 전통적 구도에서 이 분기는 "경쟁 기관 간 상호불신을 전제로 공통 장부를 운영해야 하는가" 여부로 정의되었다. 상호불신이 크면 탈중앙 합의를 가진 퍼블릭 구조가, 그렇지 않으면 합의 비용이 낮은 프라이빗 구조가 적합하다는 논리였다.
현대적 구도에서 이 분기는 퍼블릭 체인의 유동성과 네트워크 접근성, 그리고 발행자 통제권과 프라이버시 사이의 트레이드오프로 재정의되었다. 현재 대부분의 기관 토큰 상품은 퍼블릭 체인에 배포되지만 화이트리스트, 동결, 재발행 권한을 발행자가 완전히 보유하는 방식으로 설계되고 있다.
이에 따라 프라이빗 체인이 여전히 선택되는 경우는 더 좁아졌다. 주요 사용처가 이미 자체 고객 네트워크 내에 존재하고 외부 유동성 접근이 본질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경우, 또는 규제상 퍼블릭 체인 사용이 불가능한 일부 관할권 정도다. 프라이빗 체인은 더 이상 신뢰가 부족한 환경의 선택지가 아니라, 특정한 통제 요구나 규제 제약이 있는 환경의 선택지로 재정의되었다.
글로벌 블록체인 구축 사례들을 통해 이 두 가지 전환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2. 글로벌 동향: 기관, 기업의 블록체인 도입 사례와 수렴 패턴
2.1 북미 금융기관의 사례
글로벌 대형 금융기관들의 블록체인 도입은 2025년을 기점으로 자체 프라이빗 인프라에서 퍼블릭 체인 기반 상품 배포로 빠르게 중심이 이동했다.
- JP모건: 자산군과 거래 성격에 따라 퍼블릭과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선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2019년부터 프라이빗 체인 키네시스(Kinexys, 구 Onyx)를 운영하며 누적 1.5조 달러 이상, 일 평균 20억 달러 이상의 기관 거래를 처리해왔다. 2025년 6월 USD 예금 토큰 JPMD를 코인베이스가 개발한 이더리움 레이어2 체인 베이스에 파일럿 배포해 11월 정식 전환했고, 2026년 1월에는 디지털 애셋(Digital Asset)과 협력해 JPMD를 칸톤 네트워크에 네이티브 발행하기로 발표했다. JPMD는 퍼블릭 체인에 배포되지만 JP모건이 지정한 화이트리스트 주소 간에만 전송 가능하며, 스마트 컨트랙트 통제권, 키 관리, 역할 분리, 모든 주소 간 자산 이동 권한을 JP모건이 독점적으로 보유하도록 구현되었다. 반면 2025년 11월 JP모건은 시트코(Citco)와 협업해 사모펀드의 첫 토큰화를 완료했는데, 이는 기존의 프라이빗 체인 키네시스에서 진행되었다.
- 골드먼삭스(Goldman Sachs), 뉴욕멜론은행(BNY Mellon), 미 예탁결제청산공사(DTCC): 칸톤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이다. 2025년 7월 골드먼삭스 디지털 자산 플랫폼(Goldman Sachs Digital Asset Platform, GS DAP)과 뉴욕멜론은행의 리퀴디티다이렉트(LiquidityDirect)를 통합한 미국 최초의 토큰화 머니마켓펀드(Money Market Fund, MMF) 솔루션을 칸톤 위에 출범시켰고, 2025년 12월 미 예탁결제청산공사가 칸톤을 공식 토큰화 파트너로 선정하며 미국채 토큰화 파일럿을 칸톤 위에서 진행 중이다.
- 블랙록(BlackRock): 토큰화 인프라를 자체 구축하지 않고, 자산 발행사와 인프라 제공자의 분업 모델을 선택했다. 블랙록은 BUIDL의 토큰화, 컴플라이언스, 트랜스퍼 에이전시를 전적으로 시큐리타이즈(Securitize)에 위탁해 본업인 자산 운용에 집중하고 있다.
2.2 유럽과 아시아 금융기관의 사례
- 도이치방크(Deutsche Bank): 퍼블릭 인프라의 검증 가능성과 프라이빗 체인의 통제권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 영지식 증명(zero-knowledge proof) 기술을 선택했다. 도이치방크는 2024년 11월 싱가포르 MAS의 프로젝트 가디언 하에서 ZK 스택(Stack) 프리비디움(Prividium) 기반의 자체 레이어2 블록체인 구축을 발표했다.
- 소시에테제네랄(Societe Generale, SG-FORGE): 자산군별로 체인을 분리해 사용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소시에테제네랄은 USDCV를 이더리움, 솔라나, XRP, 스텔라 등 복수의 퍼블릭 체인에 배포했으며, 2025년 11월에는 SOFR 연계 단기 디지털 채권을 칸톤에서 발행해 미국 최초의 디지털 채권 발행을 완료했다.
- DBS: 상업은행이 자체 블록체인 역량을 단계적으로 축적해 프라이빗 인프라에서 퍼블릭 체인으로 확장한 대표 사례다. DBS는 2019년 세계 최초의 은행 운영 디지털 거래소 DDEx(DBS Digital Exchange)를 자체 구축했다. 2024년 10월에는 이더리움 가상머신(Ethereum Virtual Machine, EVM) 호환 프라이빗 블록체인 기반의 DBS 토큰 서비스를 출시해 기관 고객에게 실시간 결제와 프로그래머블 페이먼트를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2025년 8월에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에 머물던 토큰화를 이더리움으로 확장해 구조화 노트를 ADDX, DigiFT, HydraX 등 제3자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배포하기 시작했다.
2.3 핀테크 / 페이먼트 기업의 사례
금융기관들이 신중한 단계적 접근을 취하는 동안, 2025년 핀테크와 페이먼트 기업들은 훨씬 더 공격적으로 블록체인 인프라를 도입했다. 특히 이들은 금융기관과 달리 단일 네트워크에 종속되지 않고 복수의 퍼블릭 체인을 동시에 활용하거나, 자체 체인을 구축하더라도 개방형 네트워크로 설계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 스트라이프(Stripe): 2024년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기업 브릿지(Bridge)를 11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어, 2025년 9월에는 크립토 VC 패러다임(Paradigm)과 결제 특화 레이어1 블록체인 템포(Tempo)를 공동 발표했으며, 2026년 3월 메인넷을 출시했다. 템포는 이더리움 가상머신 호환 체인으로, 가스 토큰 없이 미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수수료를 납부할 수 있으며, 결제 전용 블록스페이스를 프로토콜 레벨에서 예약하는 구조를 갖는다.
- 써클(Circle): 2025년 8월 USDC 결제와 자본시장을 위한 레이어1 체인 아크(Arc)를 공식 발표하고 10월 퍼블릭 테스트넷을 런칭했다. 아크는 이더리움 가상머신 호환 체인으로 USDC를 네이티브 가스 토큰으로 사용하며, 서브초 단위 확정성, FX 엔진 내장, 선택적 프라이버시 기능을 특징으로 한다.
- 로빈후드(Robinhood): 2025년 6월 아비트럼 오르빗 스택을 기반으로 자체 레이어2 체인을 구축 중임을 발표했으며, 2026년 초 퍼블릭 테스트넷을 가동했다. 현재는 유럽 연합 고객을 대상으로 200여 개 미국 주식과 ETF 토큰을 아비트럼 원(Arbitrum One)에 발행하고 있으며, 2025년 12월 기준 토큰화 주식 수가 2,000개에 근접했다. 자체 체인은 실물자산 토큰화(RWA)에 최적화된 구조로, 24/7 거래와 셀프 커스터디, 크로스체인 브릿지를 네이티브 기능으로 지원하도록 설계되고 있다.
- 비자(Visa): 자체 체인을 구축하지 않는 대신 멀티체인 정산 허브로 자리매김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비자는 현재 이더리움, 솔라나, 아발란체, 스텔라 등 4개 체인에서 USDC, EURC, USDG, PYUSD에 대한 정산을 지원하고 있다. 2025년 12월에는 크로스 리버 은행(Cross River Bank), 리드 뱅크(Lead Bank)와 솔라나 체인 위에서 미국 내 USDC를 정산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개시했다. 비자는 아크의 디자인 파트너인 동시에 템포에 앵커 밸리데이터로 참여하는 등, 네트워크 중립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다.
- 페이팔(PayPal): 자체 체인 구축 없이 퍼블릭 체인 분산 배포에 의존하는 접근을 택했다. 2023년 8월 팍소스 발행으로 이더리움에 런칭한 PYUSD는 2024년 솔라나, 2025년 7월 아비트럼, 이후 스텔라까지 네이티브 배포를 확장했으며, 레이어제로(LayerZero)를 통한 옴니체인 버전 PYUSD0을 통해 트론(Tron), 아발란체, 세이(Sei) 등으로 간접 확장되었다.
- 레볼루트(Revolut): 자체 체인을 구축하지 않고, 다중 퍼블릭 체인 위에서의 사용자 접점 레이어 구축에 집중했다. 이더리움, 솔라나, 트론, 폴리곤, 아비트럼, 옵티미즘 등 6개 체인에서 USDC, USDT 등 스테이블코인을 지원하며, 2025년 10월 MiCA 라이선스 확보 직후 USD-USDC/USDT 간 1:1 수수료 없는 환전 기능을 출시했다. 레볼루트의 자체 GBP 스테이블코인은 현재 영국 금융행위감독청의 샌드박스를 통해 파일럿 중에 있다.
2.4 스택과 프로토콜 레벨의 수렴 패턴
위의 사례들을 통해 다음의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 발행자 통제권과 체인 레이어의 분리가 표준화되었다. 과거 퍼블릭 체인은 통제 포기와 동의어로 여겨졌으나, JPMD, BUIDL 등 퍼블릭 체인 위에 배포하되 권한 분리를 스마트 컨트랙트 레벨에서 완전히 보유하는 모델의 채택 이후로는 이러한 인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 금융기관과 핀테크/페이먼트 기업은 뚜렷한 행보 차이를 보인다. 금융기관은 발행자 통제권을 유지하는 프라이빗 토큰을 퍼블릭 체인에 배포하는 방식을 표준으로 삼는 반면, 핀테크와 페이먼트 기업들은 더 개방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이 차이는 각자의 비즈니스 모델이 요구하는 네트워크 접근성 수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기관 고객 간 폐쇄적 거래가 중심인 금융기관과 달리, 핀테크는 개방형 경제 안에서 수많은 지불자와 수취자가 연결되어야 하므로 복수의 체인에 배포하고, 개방형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유리하다.
- 초기의 자체 프라이빗 컨소시엄 네트워크 모델은 칸톤 네트워크와 같은 신세대 기관 공용 L1에 의해 상당 부분 흡수되고 있다. 칸톤 네트워크는 프라이버시가 프로토콜 레벨에 내장된 구조로, 다수의 기관들이 체인 밸리데이터 참여 중이며 연 4조 달러 규모의 토큰화 볼륨을 처리하는 사실상의 기관 공용 표준이 되었다.
- 인프라 자체 구축은 더 이상 필수 요건이 아니다. 블랙록이 BUIDL의 토큰화 전반을 시큐리타이즈에 위탁한 사례는 자산 발행자와 인프라 제공자의 수직적 분업이 유효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모든 플레이어가 자체 체인, 컴플라이언스 스택, 커스터디 인프라를 직접 구축할 필요는 없으며, 핵심 경쟁력에 따라 구축과 위탁의 선택이 달라져야 한다.
2.5 스택 선택의 실무 기준
이러한 글로벌 사례를 바탕으로 스택 선택의 실무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체 체인을 구축하기로 방향을 잡았다면, 곧바로 특정 프레임워크를 비교하기 전에 이더리움 생태계의 하위 레이어(L2 롤업)로 편입될 것인지, 아니면 독립된 레이어1을 구축할 것인지, 칸톤 네트워크와 같은 기관 공용 네트워크에 어플리케이션을 구축할 것인지, 프라이빗 체인을 구축할 것인지 등을 결정해야한다.
2.5.1 경로 1: 이더리움 레이어2 체인 구축
이더리움 레이어2 체인은 이더리움 메인넷의 보안 모델을 상속받으면서 자체 체인 공간을 운영하는 구조다. 이더리움 메인넷이 정산 레이어로 기능하고, 롤업은 실행 레이어만 독립적으로 구성한다. 이더리움 레이어2 프레임워크는 옵티미즘(Optimism)의 OP 스택, 아비트럼(Arbitrum)의 오르빗(Orbit), 지케이싱크(ZKsync)의 ZK 스택, 그리고 폴리곤(Polygon)의 CDK가 경쟁 중이다.
- OP 스택: 가장 폭넓은 레퍼런스를 보유하고 있다. 레이어2 체인 생태계의 트랜잭션 볼륨 기준 약 50% 이상을 차지하며, 32개 이상의 메인넷 체인이 이 스택 위에서 운영되고 있다. 개발자 풀이 가장 크고 툴링이 가장 성숙해있다. OP 스택의 개발사 옵티미즘은 올해 1월 기업용 관리 솔루션 OP 엔터프라이즈(Enterprise)를 출시했으며, 이어 4월에는 기업용 프라이버시 솔루션 프라이버시 부스트(Privacy Boost)를 OP 스택의 구성 요소로 채택했다. 코인베이스의 베이스(Base)가 OP 스택으로 빌딩된 대표적인 사례로, 베이스는 2025년 한 해에만 ~$250M의 시퀀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 ZK 스택: 영지식 증명 기반의 프레임워크이다. 영지식 증명을 통해 트랜잭션의 무결성이 증명되어 보다 빠른 파이널리티(finality)를 갖는다는 점이 장점이며, ZK 스택의 개발사 지케이싱크(ZKsync)는 기존 스택을 일부 변형해 기관용 프라이버시 보존 스택 프리비디움(Prividium)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도이치방크의 자산 토큰화 플랫폼 DAMA 2가 프리비디움을 채택해 구축 중에 있다.
- 아비트럼 오르빗: 이더리움에 직접 정산되는 레이어2 체인을 구축하거나, 기존 레이어2 위에 올라가는 레이어3 형태로 체인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커스텀 가스 토큰, 거버넌스, 허가형/퍼블릭 구조 등을 체인별로 설계할 수 있으며, 스타일러스(Stylus)를 통해 솔리디티(Solidity) 외 Rust/C/C++ 기반 스마트 컨트랙트를 지원하는 등 높은 기술적 자유도를 특징으로 갖는다. 대표적인 활용 사례로는 로빈후드가 자사 토큰화 주식 플랫폼을 오르빗 기반 자체 레이어2 체인으로 구축해 2026년 초 퍼블릭 테스트넷을 가동한 것을 들 수 있다.
- 폴리곤 CDK: 영지식 증명 기반의 프레임워크로, 데이터 가용성 계층, 가스 토큰, 실행 환경을 체인별로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2026년에는 금융기관 대상 프라이버시/컴플라이언스 기능을 강화한 CDK 엔터프라이즈가 출시되었으며, 3월 에이펙스 그룹(Apex Group)이 CDK 기반 체인 T-REX를 구축할 것을 발표하기도 했다.
어느 프레임워크를 선택하든 레이어2 체인의 운영에는 자체 체인의 노드 클라이언트 외에 데이터 가용성(DA) 솔루션의 운영이 추가로 필요하며, 이 둘은 L2 운영 비용의 상당 부분을 결정한다. 이더리움에 직접 제출하는 방식은 가장 안전하지만 상대적으로 비싸며, 기관 대상 고가치 자산 발행이 목적이라면 기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겐DA(EigenDA), 셀레스티아(Celestia), 어베일(Avail) 등 외부 DA 솔루션을 차용하는 경우 비용은 낮아지지만 각각의 보안 모델이 상이하므로 적절한 평가가 필요하다.
2.5.2 경로 2: 독립 레이어1 체인 구축
독립 레이어1 체인은 이더리움으로부터 분리된 자체 검증자 집합을 운영하는 구조다. 보안은 자체 검증자 집단에 의존하고, 거래 완결(finality), 수수료, 업그레이드 등 모든 결정권이 체인 자체에 귀속된다. 독립 레이어1이 선택되는 상황은 주로 어플리케이션 특성상 기존 체인의 수수료 변동성이나 거래 처리 속도가 제약이 되는 경우, 혹은 커스텀 가스 토큰/허가 모델/수수료 정책이 요구되는 경우다.
독립 레이어1 체인 구축에 있어 흔히 사용되는 스택은 아발란체 L1(구 Subnet)과 코스모스(Cosmos) SDK를 들 수 있다. 아발란체 L1은 독립 검증자 집합을 운영하는 이더리움 가상머신 호환 레이어1 구조로, 커스텀 가스 토큰과 다중 수준의 허가 모델을 지원한다. 아발란체 L1은 자체 검증자 집단을 구성해 참여 기관만 트랜잭션을 검증하도록 제어할 수 있게함으로써 기관에게 높은 수준의 통제권을 부여한다. 아발란체 레이어1은 JP모건의 오닉스 에버그린(Onyx Evergreen) 실험, 우리은행-BDACS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개념증명 등 실증 실험 위주의 기관 레퍼런스를 보유하고 있다. 코스모스(Cosmos) SDK의 경우 소비자 어플리케이션 계열에서는 유의미한 대안이지만, 현재 기관/기업 레퍼런스는 제한적이다.
최근에는 새로운 블록체인 스택인 커먼웨어(Commonware)도 주목받고 있다. 커먼웨어는 OP Stack 등 기존 프레임워크들이 체인을 정해진 실행 규칙과 보안 설정에 속박시킨다는 점을 지적하며, 필요한 기능을 골라 조합 가능한 스택으로 구축할 수 있도록 구현되었다. 커먼웨어는 합의와 서명 메커니즘, 상태 관리 데이터베이스, 수수료 계산 메커니즘 등 블록체인의 거의 모든 구성요소에 대한 커스터마이징을 허용하며, 이에 특수한 목적을 갖고 구축되거나 암호학적으로 유연한 구현을 필요로 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에게 특히 적합한 스택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적 구현 사례로는 앞서 언급한 스트라이프의 결제 중심 레이어1 체인 템포(Tempo)가 있다.
2.5.3 경로 3: 기관 공용 네트워크 참여 / 프라이빗 네트워크 구축
칸톤 네트워크는 디지털 애셋(Digital Asset)이 개발한, 프라이버시 기능이 내장된 레이어1 체인이다. 칸톤 네트워크 생태계는 각 기관이 거래 단위의 프라이버시가 내장된 격리된 환경에서 거래를 처리, 소수의 기관 밸리데이터(Super Validator)에 의해 그 정합성을 검증받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경쟁 기관 간 거래 내용이 상호 노출되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진다.
프라이빗 네트워크 스택은 하이퍼레저 패브릭(Fabric)과 코다(Corda) 양강 구도에서 현재는 하이퍼레저 베수(Besu)가 주요 선택지로 부상했다. 패브릭은 비금융 컨소시엄과 대규모 엔터프라이즈 레퍼런스에서 여전히 유효하지만, 토큰화와 금융 연계가 핵심인 프로젝트에서는 EVM 호환성을 지원하는 베수가 주로 선택받고 있다.
3. 한국 시장에서의 기회: 규제 지형과 실행 경로
한국에서 블록체인 솔루션을 구축하려는 실무자는 앞서 논한 글로벌 의사결정 프레임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한국 고유의 규제 지형이 여러 분기점에서 선택지를 제한하거나 특정 경로를 강제하기 때문이다. 용례별로 어느 법령이 적용되며 그것이 체인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먼저 매핑해야 한다.
3.1 규제 지형
원화 스테이블코인 영역에서 한국은행은 2026년 4월 발간한 2025년 지급결제보고서를 통해 은행 중심 발행 원칙을 공식화했다. 은행이 발행을 담당하고, 비은행은 혁신적 활용 사례 발굴, 유통, 이용자 확보 역할을 담당하는 상호 보완 구조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의 중심 시나리오는 이 원칙을 반영해 은행권이 발행 주체 지분의 50%+1주 이상을 보유하는 51% 룰과 100% 준비금 요건을 담고 있어, 비은행 기업의 자체 발행 여지는 사실상 남아있지 않다.
토큰증권 영역에서는 2026년 1월 개정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이 통과되며 규제 경로가 상당 부분 명확화되었다. 분산원장이 법적 효력을 갖는 증권 계좌부로 규정되었고, 자기자본 10억 원 이상, 권리자 보호 설비, 이해상충 방지체계 등을 갖춘 발행인이 금융위에 등록해 직접 발행할 수 있는 발행인계좌관리기관 제도가 신설되었으며, 장외거래를 통한 투자계약증권의 증권사 유통도 허용되었다. 한국예탁결제원(KSD)은 2025년 6월부터 분산원장 기반 전자등록 적합성 심사와 발행/유통 총량 관리 기능을 갖춘 토큰증권 플랫폼 테스트베드를 가동 중이며, 증권용 메인넷에는 복수의 계좌관리기관이 참여해야 하고 한국예탁결제원 주도 인프라와의 연동이 의무로 설정될 전망이다.
두 영역의 공통점은, 글로벌에서 관찰되는 "기관 공용 레이어1으로의 흡수 패턴"이 한국에서는 공공 또는 반공공 인프라(은행 컨소시엄/한국예탁결제원)에 의한 집중화 구조로 변주된다는 점이다. 칸톤 네트워크가 시장 자율로 기관 공용 표준이 되는 글로벌과 달리, 한국에서는 발행 주체와 인프라가 법제도로 한정되어, 체인 선택 자체의 경쟁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3.2 국내 동향
발행 경로가 사실상 특정 주체로 한정된 상황에서, 한국 시장의 실제 경쟁은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로 이동한다.
3.2.1 금융권
스테이블코인에서는 발행 주체로, 토큰증권에서는 계좌관리기관 역할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며, 저마다 다른 전략적 포지셔닝을 구축하고 있다.
- KB국민은행: 한국은행 주도 공공 인프라와의 결합에 가장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2026년 4월 KB금융은 한국은행과 '디지털화폐 및 예금 토큰 기반 지급결제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으며, 프로젝트 한강 2단계에서는 국내 최대 PG사인 KG이니시스와 연계해 기존 결제 인프라 위에서 예금토큰 결제가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 신한투자증권: SK증권, LS증권과 함께 블록체인글로벌이 개발한 펄스(Pulse) 메인넷을 통해 STO를 위한 표준 플랫폼을 목표로하고 있다.
- 우리은행: B2B 및 토큰증권 결제 레이어를 타게팅하고 있다. 지분 투자 파트너 비댁스(BDACS)는 2025년 9월 100% 원화 담보 구조의 스테이블코인 KRW1을 아발란체 L1 위에 발행했으며, 우리은행은 이를 기업 간 대금 결제와 증권형 토큰 거래 결제 수단으로의 활용에 무게를 두고 있다.
3.2.2 핀테크 및 유통 접점 플레이어
이들은 발행 주체에서 제외된 가운데, 유통/인프라/커스터디 등 인접 레이어에서 포지션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관찰된다. 대표적인 세 가지 경로가 드러난다.
첫째는 자체 체인 구축을 통한 유통 및 어플리케이션 레이어의 확보다.
- 기와(GIWA): OP 스택기반으로 구축되고 있는 이더리움 레이어2 체인으로, 고객확인제도/자금세탁방지를 고려한 금융 친화적 블록체인과 원화/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유통 허브를 지향한다. 두나무는 자체 거래 인프라와 유동성을 통해 발행 주체가 아닌 유통 파트너로서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의 한 축을 차지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2026년 2월 두나무는 하나금융그룹과 하나은행 국내외 지점 간 SWIFT 방식 송금 전문을 기와체인 상의 블록체인 메시지로 대체하는 기술검증을 완료했으며, 이 과정에서 영지식 증명 기반 프라이버시 프로토콜 '보자기(BOJAGI)'를 적용해 사용자 정보를 보호하는 구조를 검증했다.
- 마루(Maroo): 기와와 달리 이더리움 생태계에 편입되지 않는 독립 레이어1을 구축하는 경로를 선택했다. 거래 수수료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지불/규제 준수 경로와 제한 없는 지갑 경로의 공존/AI 에이전트 전용 계정 구조 등 원화스테이블코인의 다양한 용례에 집중하며, 스테이블코인뿐 아니라 실물자산 토큰화(RWA)와 증권형 토큰 발행(STO)의 통합 플랫폼을 겨냥하고 있다. 핵심 기술 일부는 2025년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BDAN)와 협업해 출시한 디지털지갑 '비단주머니'에 적용되어 있다.
둘째는 빅테크 간 또는 빅테크-거래소 간 연합을 통한 유통망 확보다. 은행권이 발행 주체로 고정된 상황에서 빅테크와 거래소는 발행 주체와의 파트너십 및 유통망 결합으로 시장 진입 경로를 확보하고 있다.
- 네이버-두나무 연합: 네이버와 두나무는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해 인수 절차를 일부 마친 상태다. 이를 통해 네이버, 네이버파이낸셜, 두나무로 이어지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유통 구도가 구체화되고 있으며, 네이버페이의 결제/커머스 인프라, 업비트의 거래소 유동성과 기와체인이 하나의 스택으로 결합될 것으로 예상된다.
- 카카오그룹: 카카오 그룹은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와 스테이블코인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이들의 인프라를 활용한 발행, 유통, 결제, 수탁 전반의 사업을 구상 중에 있다. 과거 카카오 그룹은 클레이튼을 개발, 운영하며 노하우를 쌓은 바 있다.
- 빗썸-토스 연합: 빗썸이 유통 및 거래를, 토스가 결제 및 송금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구조로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양사의 상장 문제로 진전이 더뎌진 상태로 알려져 있다. 빗썸은 원화 제도화 지연을 보완하기 위해 달러 스테이블코인 유통 확대로 전략을 일부 선회했으며, 2026년 4월 서클과 디지털자산 인프라 및 스테이블코인 기술에 대한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3.2.3 실행 과제: 블록체인을 어떻게 도입해야 하는가
3.2.3.1 자체 체인을 구축할 것인가, 기존 체인 위에 배포할 것인가
블록체인 도입의 첫번째 관문은 자체 체인을 구축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 체인 위에 배포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자체 체인을 채울 유저와 트래픽이 이미 존재하는지, 그리고 체인 레벨의 설계 통제권이 비즈니스 경쟁력에 직결되는지라는 질문과도 같다.
첫 번째 질문은 규모의 경제에 관한 것이다. 자체 체인의 시퀀서 또는 밸리데이터 운영, 개발자 생태계 구축, 브리지와 지갑 연동, 보안 감사는 연간 수십억 원대의 고정비를 발생시키며, 이를 상쇄하려면 체인 출범 시점부터 지속적인 트랜잭션 유입을 통한 수익성이 보장될만큼 막대한 크기의 사용자 풀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고정비를 상쇄하기 위해 선택하는 대표적인 보조 경로는 토큰 발행이다. 퍼블릭 체인의 경우 토큰 판매와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통해 초기 구축 비용의 일부를 외부 자본으로 조달한다. 예외적으로 베이스는 토큰 없이 시퀀서 수익과 모기업의 자금력으로 비용을 감당하는 모델을 택했는데, 이는 코인베이스가 이미 보유한 대규모의 사용자 기반을 베이스에 이전시킬 수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토큰 발행은 자본 조달의 이점이 분명하지만, 이 편익만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아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 경로로 자본을 조달하기에 실행 리스크가 매우 높다.
두 번째 질문은 제품의 구조적 요구에 관한 것이다. 예금, 주식, 채권, 대출, 포인트, 디지털 자산처럼 지금까지 서로 다른 시스템 위에서 파편적으로 운영되던 자산군을 하나의 백엔드에서 통합적으로 다루려 할 때 체인 수준의 통제권은 필수적이다. 수수료 체계를 자사 서비스에 맞춰 재설계하거나, 자산군 간 이동이 단일 트랜잭션으로 해소되는 구조를 내재화하거나, 한국 규제에 대응하는 계정 구조와 프라이버시를 프로토콜 수준에서 반영하려면 범용 퍼블릭 체인의 기본 설계로는 구현이 어렵기 때문이다. 반대로 단순 토큰 발행이나 단일 자산의 유통이 주된 목적이라면 이 통제권은 스마트 컨트랙트 레벨의 권한 설계만으로도 충분히 확보된다.
3.2.3.2 핀테크 플랫폼의 경우
국내에서 이 두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영역은 대형 핀테크 플랫폼이다. 결제, 송금, 포인트, 자산관리가 플랫폼 내부에서 이미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어 체인의 초기 수요가 보장되고, 향후 스테이블코인 결제, 토큰증권 거래, 실물자산 토큰화, AI 에이전트 결제를 단일 백엔드 위에서 통합적으로 다루려는 요구가 체인 레벨 통제권을 실질적으로 필요하게 만든다. 체인 운영의 비용이 큰 만큼 두나무와 같이 크립토 친화적 사용자 기반을 보유한 플레이어나 네이버, 카카오, 토스와 같이 막대한 크기의 일반 사용자 풀을 확보한 플레이어 정도가 자체 체인 출시를 고려해볼 수 있다. 반대로 이보다 작은 규모의 사용자 기반을 갖고 있거나 자산군 통합의 요구가 결제와 포인트 수준에 국한되는 핀테크사에게는 기존 체인 위에 배포하는 경로가 현실적이다.
자체 체인을 선택한 이후의 논점은 스택의 성격으로 옮겨간다. 이더리움 생태계의 유동성과 개발자 풀을 흡수하는 것이 우선이라면 이더리움 레이어2 프레임워크 기반 구축이 빠르고 안전하며, 수수료와 프라이버시를 프로토콜 수준에서 재설계해야 한다면 독립 레이어1 방향이 적합하다.
기존 체인 배포를 택한 경우 체인 선택은 용례에 따라 결정된다. 범용 결제와 송금이 중심이라면 스테이블코인 유동성과 지갑/거래소 연결성이 가장 두터운 이더리움이 기본 선택지가 된다. 다만 이더리움 메인넷의 가스 비용은 소액 결제에 부적합하므로, 실제 배포는 수수료가 훨씬 낮으면서도 이더리움의 보안과 유동성을 승계하는 레이어2 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더리움 외부에서는 거래 처리 속도와 수수료 구조가 소액 결제에 특히 유리한 솔라나가 현실적 대안이며, 실제로 비자의 USDC 정산 파일럿, 페이팔의 PYUSD 배포, 레볼루트의 다중 체인 지원이 모두 솔라나를 포함하고 있다. 국경간 송금이 주된 용례라면 써클의 아크나, 스트라이프의 템포와 같이 결제에 특화된 레이어1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어느 경로를 택하든, 초기부터 단일 체인에 종속되는 설계보다는 향후 복수 체인으로의 확장을 상정한 추상화 계층을 백엔드에 두는 편이 합리적이다. 발행 체인을 바꾸거나 추가할 때 사용자 접점과 내부 시스템이 크게 흔들리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 체인 선택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결정이 될 수 있다.
3.2.3.3 금융기관의 경우
금융기관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이들의 본업인 예금, 대출, 증권 거래는 대부분 오프체인 시스템에 묶여 있어, 고객 기반이 크더라도 그것이 곧 자체 체인을 운영할 만큼의 온체인 수요로 이어지지 않는다. 발행 자산 대부분도 토큰 수준의 권한 통제면 충분하기에, 체인 레벨 통제권이 필수적인 용례는 많지 않다. 글로벌에서는 이 조건에 맞춰 기존 퍼블릭 체인이나 칸톤 네트워크 같은 기관 공용 레이어1 위에 토큰을 배포하고 발행자 통제권만 스마트 컨트랙트 수준에서 보유하는 방식이 표준이 되었으며, 블랙록-시큐리타이즈 사례처럼 자산 발행자와 인프라 제공자의 수직 분업 역시 유효한 경로로 자리잡았다.
한국의 금융기관 역시 앞서 언급했던 체인 구축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두 질문에 비추어보면 기존 체인 배포가 합리적 선택이나, 이는 한국의 규제 지형 때문에 그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초안이 현재의 은행 중심 시나리오대로 통과되는 경우 비은행의 독자 발행 여지는 매우 좁아진다. 또한 은행 중심 컨소시엄이 퍼블릭 체인 위에 토큰을 발행하는 구조가 허용되는지, 국내 이용자 대상 유통과 해외 이용자 대상 유통이 분리 규율되는지 등의 세부사항 또한 불투명한 상태이다. 토큰증권에서도 분산원장이 법적 효력을 갖는 증권 계좌부로 규정된 것은 확정된 사실이나, 예탁결제원 주도 인프라와의 연동 범위와 수준, 체인 기술 중립성 여부, 외부 인프라 제공자 협력 허용 가능성은 아직 구체화되는 단계다.
결과적으로 한국 금융기관은 자체 체인을 운영할 만한 온체인 수요는 크지 않지만, 기존 퍼블릭 체인에 자유롭게 배포하기에는 규제가 확립되지 않았고, 기관 공용 체인도 부재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에 주 자산군의 인프라는 업권 단위 컨소시엄이 허가형 공용 네트워크를 공동 구축하는 방향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자체 체인 구축에 해당하는 선택이지만, 개별 기관 단위의 의사결정이 아니라 규제 설계의 귀결로서 강제되는 집합적 구축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이 제약 안에서 한국의 은행과 증권사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 하나는 컨소시엄 구축의 주도이다. 업권 내 타 기관을 규합하여 공용 네트워크의 초기 설계와 거버넌스를 선점하는 방식이다. 신한투자증권이 SK증권, LS증권, 블록체인글로벌과 함께 펄스 컨소시엄을 조직해 토큰증권 법제화 이전부터 표준 플랫폼 지위를 선점하려 한 것이 이 경로의 초기 사례다.
- 둘째는 컨소시엄 내 포지셔닝이다. 업권 단위 공용 인프라 내에서도 발행 주체, 계좌관리기관, 정산, 커스터디, 유통 접점 등 역할이 나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규제 쟁점이 중심 시나리오대로 확정된다면 이 경로로의 수렴이 강화될 것으로 생각된다.
- 셋째는 인프라 위탁이다. 체인 운영, 토큰화 엔진, 컴플라이언스 스택 등 기술 인프라를 전문 제공자에 위탁하고 금융기관은 자산 발행, 고객 관계, 신용/리스크 판단 등 본업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 넷째는 컨소시엄 밖의 독자 영역이다. 해외 지점 간 송금, 기업 고객 대상 프로그래머블 페이먼트, 토큰화 자산 담보 대출처럼 단일 기관 혹은 소수 파트너의 허가형 인프라로 설계 가능한 영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국경 간 결제의 경우 스테이블코인이 외국환거래법상 규제 공백 상태에 있어 퍼블릭 체인의 활용 논의의 여지가 남아있으나, 최근의 입법 논의는 이를 기존의 외환 규제 체계로 편입시키는 쪽으로 수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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