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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Felix)에 이어 벤츄얼스(Ventuals)까지 정리 수순에 들어가면서 HIP-3의 구조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처음에는 HIP-3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누구나 시장을 열 수 있는 무허가 구조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유동성이 한곳으로 쏠리고 후발주자가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열려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승자독식으로 귀결된다면, HIP-3가 공평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본다. HIP-3가 실패했다기보다, 경쟁이 발생할 지점을 우리가 잘못 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상장 영역은 애초에 여러 팀이 같은 자산을 두고 오래 공존하기 어려운 곳이다. 유동성이 핵심인 시장에서는 결국 가장 깊은 오더북으로 거래가 모일 수밖에 없다.
HIP-3의 가장 큰 장점은 콜드스타트 문제를 줄여준다는 점이다. 빌더는 별도의 거래소를 처음부터 키울 필요가 없다. 하이퍼리퀴드 안에서 바로 시장을 열고, 이미 존재하는 트레이더와 유동성에 접근할 수 있다. 신규 거래소가 겪는 초기 유동성 부족을 크게 줄여준다는 점에서 빌더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인 구조다.
하지만 바로 그 장점이 곧 단점이 된다. 독립 거래소에서는 유동성이 얕은 신규 상장 상품도 일정 기간은 해자가 있다. 사용자가 그 상품 하나를 거래하려고 굳이 다른 거래소까지 찾아갈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이미 거래소 안에 머물고 있는 사용자들이 최소한의 거래량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HIP-3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트레이더는 같은 화면 안에서 여러 시장을 동시에 본다. 비슷한 상품이 더 깊은 오더북으로 옆에 상장돼 있으면 주문은 빠르게 그쪽으로 이동한다. 누구나 시장을 열 수 있지만, 유동성은 결국 가장 깊은 곳으로 모인다.
이 현상은 예외라기보다 거래소 비즈니스의 기본 원리에 가깝다. 유동성은 유동성을 부른다. 같은 상품을 여러 디플로이어가 나눠 상장하면 각 오더북의 품질은 모두 나빠진다. 스프레드는 넓어지고 체결가는 불리해진다.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트레이더다. 무기한 선물 시장에서 개별 계약은 한곳으로 모이는 편이 자연스럽다.
중요한 것은 같은 자산을 몇 팀이 중복 상장했느냐가 아니라, 해당 시장의 오더북이 얼마나 깊고 체결 품질이 얼마나 좋은가다. 인터넷이 잘 작동하는지를 판단할 때 TCP/IP 구현체 수를 세지 않는 것처럼, HIP-3의 건강성도 단순히 디플로이어 수로 평가하기 어렵다.
이 관점에서 보면 TradeXYZ의 위치는 이미 독보적이다. 상장 영역에서 TradeXYZ와 정면으로 경쟁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빌더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떻게 상장 영역을 더 경쟁적으로 만들 것인가”가 아닐 수 있다.
더 중요한 질문은 경쟁이 실제로 어디에서 가능한가다.

Source: ASXN
필자가 판단하기에 그 답은 사용자 접점에 있다. 누가 아직 온체인 무기한 선물 시장에 들어오지 않은 사용자를 데려올 수 있느냐의 문제다.
무기한 선물에 대한 수요 자체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다. 신크러시 캐피털(Syncracy Capital)의 “The Great Perpification” 글에서 잘 설명되어 있듯, 대부분의 리테일 사용자에게 무기한 선물은 옵션이나 CFD보다 이해하기 쉬운 상품이다. 흡수할 수 있는 파생상품 시장도 크고, 전 세계에는 아직 제대로 된 브로커리지 서비스를 쓰지 못하는 사용자가 수십억 명 남아 있다.
다만 이 논리는 하이퍼리퀴드 기반 프론트엔드를 구축하고 있는 빌더들에게 꽤 냉정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사용자 획득, 현지화, 상장 전략은 모두 프론트엔드가 담당한다. 여러 프론트엔드는 같은 사용자의 거래를 두고 경쟁한다. 반면 프로토콜은 거래가 늘수록 소프트웨어처럼 확장되고, 더 높은 마진 구조에 가까워진다. 같은 사용자를 두고 경쟁하는 프론트엔드는 가격 결정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이번 달 벤츄얼스가 정리되는 와중에도 HYPE가 크게 오른 것은 이 구조를 잘 보여준다. 프론트엔드들이 인센티브 경쟁을 하며 포기한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가치는 결국 모든 거래가 통과하는 하위 인프라, 즉 프로토콜에 남는다.
그래서 같은 크립토 네이티브 트레이더를 대상으로 또 하나의 무기한 선물 앱을 만드는 전략은 승산이 낮을 수밖에 없다. 같은 크립토 사용자층을 향해, 같은 에어드롭과 포인트 캠페인을 돌리고, 같은 백엔드에 연결하고, 비슷한 터미널 UI를 제공하는 구도다.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이 많지 않다. 이 싸움을 택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누가 더 많은 인센티브 예산을 태우느냐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은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되기 어렵다. 포인트로 사용자를 붙잡다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팀과 제품이 다른 곳에 흡수되는 결말로 가기 쉽다. 벤츄얼스가 다른 팀으로 합류한 것은 오히려 그중 나은 결말에 가까웠다.
독립 디플로이어 모델도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차이는 진입 비용이 더 높다는 점뿐이다. 너무 틈새적인 상품은 수요가 부족하고, 충분히 큰 상품은 TradeXYZ와 정면으로 부딪힌다. 여기에 50만 HYPE 스테이킹 본드와 경매 비용까지 더해지면 ROI는 더더욱 악화된다.
그렇다고 기회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TradeXYZ가 모든 사용자를 장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TradeXYZ는 크립토 네이티브 트레이더 수요에는 강하다. 그러나 비크립토 사용자, 특정 지역의 리테일 수요, 현지 언어 기반 유통망, 규제형 브로커리지 경험, 특정 커뮤니티가 이미 보유한 사용자층, HIP-4 결과 시장 같은 새로운 카테고리까지 모두 장악한 것은 아니다.
살아남을 수 있는 프론트엔드는 기존 프론트엔드들이 같은 사용자층을 두고 다시 경쟁하는 팀이 아닌 아직 온체인 무기한 선물을 쓰지 않는 사용자를 데려오는 팀일 것으로 추측한다. 지역별 유통망을 가진 팀, 현지 언어와 규제 환경에 맞춘 앱, 혹은 이미 대규모 사용자를 보유한 소비자 앱이 자기 사용자층에 무기한 선물을 붙이는 방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팬텀(Phantom)이다. 팬텀은 트레이더를 처음부터 새로 모은 것이 아니라, 이미 보유하고 있던 수백만 명의 유저들에게 무기한 선물 거래를 지원한 것이다. 이런 팀은 시장을 먼저 열고 수요가 생기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이미 가진 사용자 기반에 거래 기능을 추가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거래를 빌더 코드를 통해 수익화하는 전략을 택한다. 어느 거래 인프라를 사용할지는 그다음 문제다.
이런 팀에게는 디플로이어 경제성도 다르게 보인다. 단독으로 보면 50만 HYPE 본드와 운영 비용은 부담스러우나 이미 사용자를 보유한 팀이 자기 사용자층에 맞는 시장을 붙이는 구조라면 계산이 달라진다. 시장이 먼저이고 사용자가 나중인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먼저이고 시장이 나중이기 때문이다. 벤츄얼스가 놓친 지점이 여기에 있다. 카테고리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프리 IPO 시장은 충분히 흥미로운 주제였다. 문제는 시장을 열었지만, 그 시장을 거래할 사용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관점에서 Markets.xyz는 꽤 합리적인 방향을 잡고 있다고 판단한다. Markets.xyz가 하려는 것은 단순히 또 하나의 무기한 선물 터미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크립토 버블 밖에 존재하는 리테일 사용자를 대상으로 소비자 제품에 가까운 거래 경험을 만들려는 시도다. 단순한 UI, 게임화된 구조, 소셜 피드, 보상 루프를 통해 먼저 사용자를 만들고, 그 사용자층을 거래 시장으로 연결하려 한다.
결국 경쟁은 누가 어떤 자산을 상장하느냐보다, 누가 사용자를 확보하고 그 거래를 어떤 방식으로 수익화하느냐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본드 규모나 수수료율을 조금 조정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용자 획득, 유통, 브랜드, 지역화, 제품 경험이 함께 작동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리고 아직 모든 HIP-3 디플로이어들이 이 과제를 풀어내지 못했다.
지금 단계에서 사용자를 확보하지 않은 채 시장부터 여는 전략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이다. 우위와 대부분의 경제적 가치는 이미 사용자를 보유한 쪽에 있다. 그런 팀은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진다. 하나는 가벼운 브로커 모델이다. 빌더 코드만 가져가고, 본드와 슬래싱 리스크 없이 운영한다. 다른 하나는 수직 통합 모델이다. 빌더 코드에 더해 수수료 배분과 독점 시장까지 가져가며, 더 크고 방어 가능한 수익 구조를 만든다. 어디까지 직접 가져갈지는 사용자를 보유한 팀이 결정한다. 이런 사업은 단순히 HIP-3 디플로이어보다 여러 수익원을 가진 핀테크 사업에 가깝다. 로빈후드처럼 이미 보유한 사용자층 위에 어떤 금융 상품을 붙이고, 거래 인프라의 어느 부분까지 직접 운영할지 결정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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