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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이더리움 재단(EF)은 파스칼 카버사치오(pcaversaccio)의 이사회 합류를 발표했다. 재단 이사회는 회장 아야 미야구치(Aya Miyaguchi), 창립자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 스위스 법률 자문 패트릭 스토르헤네거(Patrick Storchenegger), 그리고 파스칼 카버사치오 네 명이 되었다. 임기는 1년이며 별도 보수는 없다.
사실 이더리움 재단은 이제 대중의 관심사에서 다소 멀어졌고, 재단의 이사회에 새 인물이 추가되었다는 것은 그다지 흥미로운 소식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 코멘트를 작성하는 이유는, 이 인선이 EF가 스스로 정한 남은 역할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규모를 축소하는 EF
이더리움 재단은 최근 전체 인력의 약 20%를 줄였다. 그리고 재단이 비운 자리는 새로 생긴 조직들이 채우고 있다. 지난 6월 이더리움 DAT 기업들과 이더리움 공동창업자 조셉 루빈이 후원하는 비영리 연구개발 조직 이더랩스(Ethlabs)가 출범했고, 일주일 뒤에는 재단의 엔터프라이즈 팀 출신들이 세운 이더리움 인스티튜셔널도 나왔다.
프로토콜 연구개발은 이더랩스 같은 조직이, 기관과 기업 대응은 이더리움 인스티튜셔널이 가져가는 모양새다. 7월에는 재단의 기관 프라이버시 태스크포스를 이끌던 팀이 EthSystems를 설립해 나갔다. 은행과 금융기관에 온체인 프라이버시 인프라를 파는 영리 기업이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사이에 세 조직이 갈라져 나온 것이다.
한때 EF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일들이 하나씩 커뮤니티와 외부 조직으로 넘어가고 있다. 재단은 이 흐름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실무를 덜어낸 뒤에도 재단에 남는 일은 무엇일까?
pcaversaccio는?
pcaversaccio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파스칼 카버사치오는 어느 회사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 보안 리서처다. 해킹 사고 피해자를 검증된 화이트햇과 연결해주는 24시간 핫라인 SEAL 911을 공동 설립해 이끌고 있고, 검열 저항,오픈소스,프라이버시,보안이라는 가치를 지키도록 꾸준히 재단에 비공식 조언을 해온 그룹인 실비컬처 소사이어티(Silviculture Society)의 멤버이기도 하다.
커뮤니티에서는 글로 더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2024년에 에릭 휴즈의 1993년 사이퍼펑크 선언문을 이더리움 버전으로 다시 쓴 "이더리움 사이퍼펑크 선언문"을 냈고, "이더리움 프라이버시: 자기주권으로 가는 길"에서는 프라이버시가 이더리움의 부가 기능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재단이 프라이버시와 보안을 뒷전에 둔다고 공개적으로, 자주, 거칠게 비판해온 사람이기도 하다.
경영이나 실무 조직 운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EF가 파스칼 카버사치오를 이사회에 초빙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더리움의 대체할 수 없는 정신
그 이유는 올해 초 공개된 EF 맨데이트(Mandate)에 있다. 이 문서에서 재단은 역할을 둘로 나눴다. 경영은 공동 집행이사들이 맡고, 이사회는 비전을 정한 뒤 경영진의 결정이 재단의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는지 감독하는 것이다. 재단 스스로의 표현으로 이사회는 "EF의 심장과 영혼을 지키는 시큐리티 카운슬"이다.
그리고 연구개발이나 기관 대응처럼 다른 주체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은 커뮤니티 기반으로 떼어낸다. 대신 다른 누구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 것, 즉 검열 저항과 프라이버시와 같은 이더리움의 근간이 되는 사이퍼펑크 정신만은 재단이 최후의 보루로 지키는 것이다. 그 감독 기구가 되는 EF 이사회에 사이퍼펑크 선언문의 저자를 앉힌 것은 이 방향성에 도장을 찍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더리움이 검열 저항성을 갖춘 네트워크, 탈신뢰 네트워크로 남아야 한다는 원칙은 성과로 측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때문에 시장이나 커뮤니티 경쟁에 맡길 수도 없다. EF는 대체 가능한 일을 전부 덜어내고, 대체 불가능한 일 하나를 남긴 것이다.
마치며
인사는 조직이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발표다. 이번 인선으로 EF는 실무를 하는 조직에서 코어와 정신을 지키는 조직으로의 방향성을 확실히 한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을 내려놓더라도 사이퍼펑크 정신만은 재단이 지킨다는 것. 그 일을 맡길 사람으로, EF는 자신을 거칠게 비판해온 사이퍼펑크를 이사회에 선임했다.
이 방향은 옳다고 본다. 이더리움은 ETH 가격이나 기관 대응처럼 유연한 대처가 필요한 영역에서 꾸준히 공격받아 왔고, 이런 일을 커뮤니티 기반 조직들에 넘겨 기동성을 확보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다. 하지만 유연성에는 대가가 따른다. 이더랩스, 이더리움 인스티튜셔널, EthSystems의 자금을 대는 것은 비트마인 같은 영리 기업들이다.
이더리움이 유니크한 가치를 갖는 것은 결국 코어에 있는 탈신뢰와 검열 저항이라는 정신 때문이다. 실무가 자본의 논리 위에서 돌아가기 시작한 이상 그 정신은 자본의 바깥에서 지켜져야 한다. 이더리움이 다른 수많은 네트워크와 같아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고, 이제 그 일을 할 수 있는 조직은 EF뿐이다.
EF의 규모는 작아졌고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그 역할은 어느 때보다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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