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가 정비되며 국내 단독 상장이 줄었다

위 차트는 업비트와 빗썸의 원화 마켓 신규 상장 중 국내 단독 상장의 비중이다. 여기서 국내 단독 상장은 바이낸스, OKX, 바이비트, 코인베이스 글로벌 거래소 네 곳의 현물 시장보다 국내에서 먼저 거래되기 시작했거나, 네 곳에 아예 상장되지 않은 가상자산의 상장을 말한다.
이 비중은 2019년 85%에서 2024년에는 9%까지 내려왔었다. 이 수치를 국내 가상자산 제도가 정비된 시점들과 겹쳐 보면, 국내 단독 상장 비중이 내려온 시기가 제도 정비 흐름과 맞물린다.
변화의 시작은 특정금융정보법이다.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신고와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2020년 3월 국회를 통과했고, 거래소는 2021년 9월까지 사업자 신고를 마쳐야 했다. 원화 마켓에서는 은행 실명계좌가 법적 요건이 되면서, 거래소는 기존 금융권의 자금세탁 방지 기준을 따라야 했기에, 상장 판단에도 이 기준이 영향을 줬을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로 국내 단독 상장 건수 자체는 신고 마감이 있던 2021년 3분기에 분기 19건에서 3건으로 줄었고, 이후 해외에서 먼저 거래된 가상자산 위주로 상장이 이어졌다.
이어 거래소들이 함께 따르는 상장 심사 기준도 생겼다. 2022년 5대 원화 거래소가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를 꾸려 공통 심사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2024년 7월 거래지원 모범사례가 시행됐다. 모범사례는 해외 상장을 요건으로 두지 않았지만, 적격 해외 거래소에서 2년 이상 거래된 가상자산은 백서와 공시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볼 수 있게 했다.
2026년(10월까지)에는 국내 단독 상장의 비중이 18%로 다시 올랐지만, 해외 선물 시장에서 먼저 거래된 가상자산까지 국내 단독 상장 집계에서 제외하면 10%로 낮은 수준이 이어지고 있다.
상장은 늘었고, 시점은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국내 단독 상장의 비중은 줄었지만, 전체 상장 건수는 줄지 않았다. 업비트와 빗썸 두 거래소의 원화 마켓 신규 상장은 2022년 43건에서 2023년 116건, 2024년 125건으로 늘었고 2025년에는 238건이 됐다.
해외에서 거래된 지 얼마나 지나 국내에 상장되는지는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비트코인 원화 가격이 최고 수준을 이어간 2025년에는 해외 상장 뒤 30일 안에 국내에 상장된 가상자산이 111건으로 전체의 47%를 차지했다. 반면 2026년에는 해외에서 1년 넘게 거래된 가상자산이 52건(31%)으로 가장 많았고, $CRV나 $RSR처럼 해외에서 6년 넘게 거래된 가상자산까지 국내에 상장되었다.
따라서 국내 상장의 기조는 제도가 정비되면서 자리 잡은 해외 선거래 가상자산 중심의 틀을 유지하면서, 시장 상황에 따라 상장 시점을 앞당기거나 늦추는 것으로 변했다고 볼 수 있다.
안정성은 높아졌지만, 거래소의 과제는 상장 밖으로 옮겨 가고 있다

해외에서 먼저 거래된 가상자산의 비중이 커지면서 상장 이후의 안정성도 개선되고 있다. 상장 뒤 2년 안에 유의종목으로 지정되거나 거래지원 종료가 공지된 비율은 2020년 상장분 24%에서 2024년 10%로 내려왔다.
이 비율은 국내 단독 상장인지, 해외에서 먼저 거래된 가상자산인지에 따라 다르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상장된 가상자산을 모두 합치면, 국내 단독 상장은 148건 중 44건(30%)이 2년 안에 유의종목으로 지정되거나 거래지원 종료가 공지됐다. 해외에서 먼저 거래된 가상자산은 279건 중 26건(9%)으로, 국내 단독 상장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한편, 상장 뒤 가격 흐름에서는 해외에서 거래된 기간이 차이를 만들었다. 중앙값을 보면 해외 상장 30일 안에 상장된 가상자산은 상장 뒤 30일 동안 39% 내렸지만, 해외에서 1년 넘게 거래된 가상자산은 7% 내리는 데 그쳤다.
정리하자면, 해외에서 먼저 거래된 가상자산은 상장 뒤 유의종목 지정이나 거래지원 종료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었고, 그중에서도 해외에서 오래 거래된 가상자산일수록 상장 직후 가격이 덜 하락했다. 거래지원 모범사례가 이런 가상자산의 심사 부담을 덜어 준 만큼, 시장 상황에 따라 상장 시점이 오가더라도 국내 상장의 무게중심은 해외에서 오래 거래된 가상자산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해외 거래 이력을 중시하는 상장 구조가 거래소에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해외에서 오래 거래된 가상자산은 상장 첫날 만들어 내는 거래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거래소 매출의 대부분은 거래 수수료에서 나오는 만큼, 상장 첫날 불러오는 거래가 적다는 점은 거래소 사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물론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면 해외 상장 직후의 가상자산 상장이 늘면서 이 부담이 줄어들 수 있지만, 시장 흐름에 좌우되는 상장 구조에만 기대서는 안정적인 사업 환경을 만들기 어렵다.
제도 정비와 함께 상장의 안정성은 높아졌다. 이제 국내 거래소에 남은 과제는 상장 밖에서 새로운 거래 수요와 수익원을 만드는 일이다.
본 글은 보난자랩(Bonanza Lab)으로부터 데이터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웹사이트: https://bonanzalab.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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