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토 시장은 오래간 하나의 시장으로 간주되어 왔다. 원래 크립토가 발명된 취지가 그랬던 대로 국경이 따로 없는 오프쇼어 거래소와 온체인이 본거지였고 국가별로 그것을 뜯어볼 만큼 시장이 크지도, 제도로 정의되지도 않았다.
지금은 형국이 좀 다르다. 시장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확대되자 각국은 라이선스와 세제, 그리고 보고 체계로 자국 시장의 테두리를 더 확실히 정의하기 시작했다. 이에 오늘날의 크립토 시장은 글로벌 오프쇼어/온체인 시장과, 현지 거래소를 중심으로 한 국가별 온쇼어 시장으로 나눠보는 것이 더 정확해졌다.
각국이 정부 차원에서 온쇼어의 구획을 확실히 하는 목적은 분명하다. 역외로 빠져나가는 자금을 관리하고 AML 의무를 적용하고, 과세 기반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디지털자산이라고 해서 제도권 금융의 관리 범위 밖에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 효율성이라는 시장의 가장 자연적인 속성 앞에서 제도의 구속력은 번번이 힘을 잃는 듯하다. 흥미로운 공통점은 온쇼어의 문턱이 높아질수록 온쇼어를 이탈하는 돈은 항상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 규모가 크고 크립토 활성도도 높은 동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이 이런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데, 여기에선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의 동아시아 보고서가 지리적 데이터에 기반한 자금의 행방을 잘 보여준다.
1. 중국: 금지가 만든 P2P 시장
중국은 예전부터 온쇼어 시장 자체를 배제한 시장이다. 2021년 크립토 거래와 채굴을 전면 금지했고, 2025년 스테이블코인도 불법 화폐로 명시했다. 크립토 자산이 아니더라도, 개인의 해외 송금은 연 5만 달러로 제한되어 있다.
제도의 취지는 크립토로 인한 자본 유출을 원천 봉쇄하려는 데 있었겠지만, 중국은 오히려 제도만으로 수요를 억누르기 어렵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준다. 중국 크립토 경제는 최소 1,763억 달러로 추정되고, 이 중 59.1%는 거래소를 거치지 않는 개인간(P2P) 거래다. 체이널리시스는 중국의 P2P 비중이 1년 새 3.5배 커졌고, 스테이블코인 P2P 송금에 참여하는 지갑 수는 2024년 1분기에서 2026년 2분기 사이 43배 늘었다고 추정한다.
이렇게 오가는 스테이블코인은 투자 목적이 아닌 결제 수단이다. 중국은 평균 31억 달러의 보유액으로 한 해 1,810만 건, 1,041억 달러를 이동시켰다. 스테이블코인의 손바뀜이 1년에 33.2번 이뤄진 것으로, 세계 평균(9.3회)의 세 배를 넘는다. 이는 즉시 사용되는 운전자본이라는 의미로, 상거래 플랫폼에 상품을 올려 거래 상대를 찾고 대금은 텔레그램으로 지갑 주소를 주고받는 식이다. 즉, 온쇼어가 막힌 중국에서 온체인은 은행 송금과 간편결제를 대신하는 통로가 됐다.
2. 일본: 온쇼어는 정체, 온체인은 성장

일본은 성숙한 현지 거래소 시장을 갖추고도 동아시아에서 DEX 비중이 가장 높게 관측된다. 일본 이용자가 거래소, DEX 등 크립토 서비스로 보낸 자금 가운데 DEX로 향한 비중이 34.5%였고, DEX 유입액은 전년 대비 36% 늘었다. 2022년 이후로 보면 DEX 유입이 200% 넘게 늘어나는 동안 현지 거래소 유입은 정체됐다.
이탈의 출처는 보통 소액 리테일이었다. DEX 스왑의 65.7%가 10~1,000달러 구간이고, 일본 거래소에서 출금한 이용자 네 명 중 한 명꼴로 이후 디파이에 자금을 넣었다. 엔화로 크립토를 사는 과정은 온쇼어에서, 그 뒤의 거래는 온체인에서 하는 구조가 자리 잡은 형세다. 현지 거래소의 역할은 점점 법정화폐 입출금 창구로 좁아지고 있다.
온쇼어가 이 수요를 붙잡지 못한 이유는 제도에 있었다. 일본의 크립토 수익에는 최고 55% 한계세율이 적용됐고, 현지 거래소의 개인 증거금 거래 레버리지는 2배로 한정돼 왔다. 지난한 상장 절차 탓에 취급 종목도 100여 개에 그친다. 투자자가 원하는 레버리지와 신규 토큰을 온쇼어에서는 구할 수 없는 환경이 장기간 이어져 온 것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 들어 이 문턱들을 하나씩 낮추는 중이다. 2026년 4월 105개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으로 재분류하는 금융상품거래법(FIEA) 개정안이 내각을 통과했고, 7월에는 세율을 약 20% 분리과세로 낮추는 개편이 진전됐는데, 이런 완화로 온체인에 나간 수요가 얼마나 돌아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3. 한국: 과세로 흔들리는 온쇼어 중심의 시장
한국은 세 나라 중 온쇼어 비중이 가장 높은 시장이다. 국내 가상자산 평가총액의 99.4%가 원화마켓에 있고, 거래는 개인 현물 중심이다. 한국 크립토 경제는 동아시아 최대인 4,491억달러였고, 성장을 이끈 것도 현지 거래소 생태계다.

그러나 거래소가 시장을 붙잡아 두는 힘은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다. 2026년 상반기 한국 거래소의 일평균 거래금액은 약 21억 달러로 직전 반기보다 44% 줄었다. 여기엔 물론 크립토 시장 전반이 약세장을 지난 탓도 반영되어 있으니, 거래량만이 아니라 돈이 나가는 규모와 경로를 같이 볼 필요가 있다.

같은 기간 국내 거래소의 외부 출고액 423억 달러 중 해외 사업자와 개인지갑으로 나간 규모는 348억 달러로 82%를 차지했다. 출고 총액은 시장과 함께 축소됐지만, 그중 해외로 향하는 비중은 2024년 하반기 78%에서 2025년 하반기 84%까지 오른 뒤 80%대를 유지하고 있다. 거래는 줄어도 빠져나가는 비중은 줄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시장의 가장 뜨거운 쟁점은 과세다. 현행 소득세법대로라면 2027년 1월부터 연 250만 원을 넘는 가상자산 소득에 22%(지방세 포함)가 부과된다. 과세 시행은 이미 세 차례 미뤄졌지만, 정부는 예정대로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와 정치권 일부에선 반발이 거세다. 과세 시점을 CARF 첫 정보교환 이후 2년, 사실상 2029년으로 미루자는 안도 나왔다. 해외 거래소 기록 없이 과세를 시작하면 국세청이 볼 수 있는 국내 거래소 이용자에게만 세 부담이 쏠린다는 이유다. 더군다나, CARF가 가동돼도 범위는 해외 중앙화 거래소까지다. CARF가 포착하는 범위는 전 세계 온체인 과세 대상 활동의 14% 정도로 추정되니, DEX와 개인지갑 거래는 제도권 시야 밖에 남는다.
4. 온쇼어와 오프쇼어 간의 긴장은 어떻게 될까
어느샌가 우리는 블록체인 인프라를 제도권 금융의 일부로 여기는 데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 기술이 애초에 중개자와 국경 밖에서 작동하도록 발명됐다는 점을 떠올리면, 온쇼어의 자율성이 떨어질수록 제도권 밖으로 우회하는 반응은 자연스럽다.
특히 한국은 해외 거래와 온체인 거래를 추적할 수단이 확보되기 전에 과세부터 시작될 수 있는 상황이다. 전망대로 세금 부담이 온쇼어에만 쌓이면, 역외 출고 비중은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듯, 문턱이 높아진 온쇼어에서 수요는 사라지기보다 경로를 우회한다. 이대로라면 한국 역내 거래소도 일본처럼 법정화폐를 크립토로 바꿔 내보내는 통로로 좁혀질 개연성이 높다.
과세 시점을 몇 년 미루는 것만으로는 이런 흐름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역내 이용자가 해외 거래소와 온체인으로 가는 이유는 세금 이전에 역내 시장이 갖추지 못한 것들, 곧 토큰화 상품, 상품 다양성, 법인 계좌, 레버리지 등에 있다. 과세 인프라 확충을 포함해 과세 논의가 이 문제들을 함께 다루지 않는다면 유예도 시간을 버는 방편에 그친다. 준비 없이 온쇼어를 조일수록 이탈이 커진다는 것은 이제 가설이라기보다 전제로 삼아야 할 만큼 여러 번 관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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