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시장이 언더라이팅하는 새로운 보험

Source: X(@lzminsky)
얼마 전, AI 리스크 관리 도구 블랭킷(Blanket)이 출시됐다. 블랭킷은 사업체 정보를 입력하면 그 사업이 안고 있는 리스크 익스포저를 진단하고,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칼시 이벤트 계약을 추천하는 도구다.
리스크 헤지의 작동 원리는 단순하다. 예측시장은 특정 사건이 발생하면 계약당 1달러, 발생하지 않으면 0달러를 지급한다. 계약 가격은 시장이 판단한 사건의 발생 확률을 반영한다.
이 구조를 이용하면 예측시장을 실물 사업의 헤지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날씨나 에너지 가격, 관세처럼 사업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의 계약을 매수해두면, 해당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받는 수익으로 사업상의 손실을 일부 상쇄할 수 있는 것이다.
서늘한 여름에 매출이 2만 달러 줄어드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예로 들어보자.
- 헤지 방법: ‘여름 평균기온이 사전에 정한 기준 이하일 경우 1달러를 지급하는 계약’을 개당 0.30달러에 2만 개 매수한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총 6천 달러다.
- 서늘한 여름: 실제 기온이 기준 이하로 내려가면 매출은 2만 달러 줄지만, 계약에서도 2만 달러를 지급받는다. 따라서 최종 손실은 계약 매입 비용인 6천 달러로 제한된다.
- 더운 여름: 반대로 기온이 기준을 상회하면 매출 손실은 없지만, 계약이 0달러로 만기돼 매입 비용 6천 달러를 잃는다.
어느 경우든 최종 손실은 6천 달러로 고정된다. 이 6천 달러는 사실상 보험료이며, 그 요율을 정하는 주체가 보험사 언더라이터가 아니라 시장의 호가였을 뿐이다.
2. 헤지 시장은 실제로 작동하고 있을까?
예측시장은 이미 투기 수요를 충분히 확보했다. 선거 예측 도구로 자리 잡은 데 이어 스포츠까지 시장을 넓히며 거래량 문제도 해결했다. 남은 과제는 사용처 확장이고, 헤지 수요는 가장 유력한 후보로 언급된다.
이론적으로는 매우 유용하다. 기존 헤지 수단이 닿지 않는 영역이 넓기 때문이다. 상업 보험의 사업중단 담보는 물리적 손상을 전제로 한다. 눈이 오지 않아 스키숍 매출이 줄어드는 위험에는 애초에 적합한 보험상품이 없다.
선물시장에는 헤지 상품이 있지만, ISDA 계약(국제스왑파생상품협회 기본계약), 선물계좌, 증거금, 최소 계약 단위 등의 요건이 접근을 어렵게 한다. 골드만삭스에는 파생상품 데스크가 있지만 동네 카페에는 없다.
문제는 명분과 실제 사용 사이의 간극이다. 예측시장에는 줄곧 도박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며, 투기 도구로서의 유용성과 별개로 헤지 시장으로 기능하는지는 검증된 적이 없다.
예측시장은 실제로 헤지 시장으로 작동하고 있을까? 혹은 실제로 헤지 수요가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거래 행태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비교 대상은 셋이다.
- CME 곡물 선물: 농산물과 축산물의 가격 변동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전통적인 헤지 시장이다.
- 칼시 스포츠 시장: 헤지 수요가 제한적인, 투기 수요가 거래를 주도하는 시장이다.
- 칼시 날씨 시장: CME 날씨 선물과 동일하게 날씨 리스크를 다루지만, 칼시 스포츠 시장과 같은 이벤트 계약 구조와 거래 환경을 공유한다. 따라서 거래 행태가 어느 쪽에 가까운지를 확인할 판정 대상이다.
헤지와 투기는 서로 다른 거래 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헤저는 리스크 구간이 오기 전에 포지션을 만들고 만기까지 보유하는 경향이 있다. 투기자는 가격 변화에 따라 포지션을 빈번하게 사고팔기 때문에 거래 회전율이 높게 나타난다.
따라서 칼시 날씨가 회전율과 보유 행태 모두에서 스포츠보다 전통적인 헤지 시장에 가깝다면, 헤지 수요가 실재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반대로, 스포츠와 구분되지 않는다면 실제 사용은 투기에 가깝다. 이 경우, 블랭킷 같은 도구는 아직 확인된 수요가 아니라 내러티브에 대응하고 있다는 결론이 된다.
측정 대상은 2025년 8월부터 2026년 8월까지 정산 완료된 칼시 마켓 1,265건이다. 누적 거래량 500계약 이상, 거래 기간 3일 이상 조건을 통과한 계약만 포함했다.
3. 데이터 1: 일평균 회전율
먼저 각 시장에서 포지션이 얼마나 빈번히 거래되는지 살펴보자. 회전율은 하루 거래량을 당일 미결제약정(Open Interest, OI)으로 나눈 값이다. 각 시장의 계약별로 일간 회전율을 계산하고, 전체 거래 기간의 중앙값을 구했다.

칼시 날씨 계약의 회전율은 0.210으로 가장 낮았다. 전통적인 헤지 상품인 옥수수 선물은 0.266, 칼시 스포츠 계약은 0.315를 기록했다.
스포츠 계약의 회전율은 날씨보다 1.5배 높았다. 이는 날씨 계약에서 포지션을 상대적으로 오래 유지하는 경향이 있으며, 실제 헤지 수요가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옥수수 선물의 회전율이 두 시장 사이에 있으며 수치 차이도 크지 않다. 따라서 회전율만으로 날씨 시장의 헤지 수요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이 지표에서 확인되는 것은 날씨 계약이 스포츠 계약보다 적게 회전한다는 사실까지다.
4. 데이터 2: 만기 보유율
두 번째는 정산 직전까지 시장에 남아 있던 OI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만기 잔존율이다. 계약별 최종 OI를 누적 거래량으로 나눠 계산했다. 값이 높을수록 만기까지 남은 포지션이 많다는 뜻이다.

날씨 계약의 만기 잔존율은 거래 기간과 관계없이 0.5를 상회했다. 반면 스포츠 계약은 각각 0.012와 0.033에 그쳤다. 날씨와 스포츠의 격차는 3~45일 구간에서 42.8배, 45일 초과 구간에서 16.7배에 달한다.
이는 날씨 계약에서 스포츠보다 뚜렷한 만기 보유 성향이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헤저는 단기적인 가격 변동보다 리스크가 현실화됐을 때의 지급을 목적으로 계약을 보유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높은 만기 잔존율은 날씨 시장에 실제 헤지 수요가 존재할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그렇다고 이를 날씨 시장 전체가 헤지에 사용된다는 증거로 단정할 수는 없다. 개별 투자자의 포지션을 추적한 수치가 아니므로, 최초 매수자가 만기까지 보유한 비율로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표가 확인해주는 것은 날씨 계약에 스포츠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만기 보유 행태가 나타난다는 사실까지다.
5. 데이터 3: 미결제약정 축적 시점
마지막으로 포지션이 언제 만들어지는지 살펴볼 수 있다. 각 계약의 일별 OI를 해당 계약의 최대 OI로 나누고, 계약의 생성 시점부터 만기까지의 경과율을 0%에서 100%로 환산했다. 이후 중앙값을 곡선으로 나타냈다.
판정 기준은 최대 OI가 절반에 도달한 시점이다. 만기까지 남은 기간이 많을 때 절반을 채울수록 포지션이 일찍 형성됐다는 의미다.

거래 기간이 3~45일인 날씨 계약은 전체 기간의 47%가 지난 시점에 최대 미결제약정의 절반을 채웠다. 만기까지 53%가 남은 시점이다. 같은 구간의 스포츠 계약은 전체 기간의 65%가 지나고 만기까지 36%가 남았을 때 절반에 도달했다.
45일 초과 계약에서는 차이가 더 컸다. 날씨 계약은 만기까지 32%가 남은 시점에 절반을 채운 반면, 스포츠 계약은 만기까지 1.3%만 남은 시점에서야 절반에 도달했다. 두 거래 기간 구간 모두 날씨 포지션이 스포츠보다 일찍 형성됐다.

이러한 조기 포지션 형성은 전통적인 헤지 시장에서도 확인된다. 2026년 8월 11일 기준 CME 곡물/축산 선물을 보면, 만기가 6개월 남은 계약에도 상당한 포지션이 이미 쌓여 있다. 옥수수 선물의 경우 만기가 16개월이나 남은 계약에도 6만5,127계약의 OI가 존재했다.
이는 리스크가 현실화되기 훨씬 전부터 포지션을 구축하는 경향이며, 칼시 날씨 계약이 스포츠보다 전통적인 헤지 시장에 가까운 행태를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6. 투기가 만든 유동성 위에 헤지가 올라간다
결론부터 말하면, 칼시 날씨 시장은 순수한 헤지 시장도, 스포츠와 같은 투기 시장도 아니다. 여전히 투기 수요가 유동성의 상당 부분을 만들지만, 그 위에서 헤지 수요도 비교적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세 지표는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날씨 계약은 스포츠보다 적게 거래되고, 더 많은 포지션이 정산 직전까지 남으며, 포지션도 더 일찍 형성된다. 개별 지표만으로는 거래 목적을 확정할 수 없지만, 이러한 행태가 일관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칼시 날씨 시장에 스포츠와 구분되는 보유 수요가 존재하며, 그중 일부가 헤지 목적일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또한 투기 수요의 존재는 예측시장의 약점이 아니라 헤지 기능을 성립시키는 전제에 가깝다. 헤저만 참여하는 시장은 거래 상대방과 유동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반면 예측시장에서는 투기자가 가격을 형성하고 유동성을 공급하며, 헤저는 이를 기반으로 필요한 리스크를 이전할 수 있다. 보험사가 리스크를 직접 인수하는 대신 시장 참여자들이 거래를 통해 리스크를 나눠 갖는 구조다.
결국 예측시장의 다음 성장은 투기를 밀어내고 헤지로 전환하는 데 있지않다. 투기가 만든 유동성 위에 실물 사업의 헤지 수요를 얼마나 크게 올릴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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