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Key Takeaways
- 1. 단일 리더 구조의 문제
- 2. 케이던스의 구조 살펴보기
- 2.1 케이던스의 문제의식
- 2.2 극단적 파이프라이닝: 독립된 인스턴스 구조를 통한 병목의 재정의
- 2.3 코러스: 고속 경로 기반의 단일 슬롯 합의 프로토콜
- 2.4 컨덕터: 슬롯의 스케줄링을 위한 오케스트레이터
- 2.5 블록의 번역, 그리고 암호화된 멤풀과의 통합
- 3. 다른 복수 제안자 설계들과의 비교
- 3.1 모두가 바라보는 방향
- 3.2 컨스텔레이션
- 3.3 세이 기가: 처리량형 복수 제안자의 수렴
- 3.4 AMP, 프리픽스 컨센서스, 그리고 DAG
- 4. 모나드의 MEV 생태계에 미칠 영향
- 4.1 MEV 기반의 리퀴드 스테이킹 프로토콜들
- 4.2 남는 것: 수수료로의 회귀와 앱 수준의 트랜잭션 정렬
- 5. 세 가지 시사점
- 5.1 합의 위에 얹을 것인가, 합의 안에 넣을 것인가
- 5.2 블록 간격, 물리 법칙에서 정책으로
- 5.3 MEV, 시장화에서 무력화로
관련 프로젝트
Key Takeaways
- 모나드의 개발사 카테고리 랩스(Category Labs)가 복수 동시 제안자(Multiple Concurrent Proposers, MCP) 합의 프로토콜 '케이던스(Cadence)'를 공개했다. 기존의 복수 제안자 설계들이 별도의 집계 단계를 두느라 블록당 두 번의 통신 라운드를 추가로 지불했던 것과 달리, 케이던스는 복수 제안자를 합의 그 자체에 내장하여 단일 리더 합의와 동일한 세 라운드의 최적 지연으로 블록을 완결한다.
- 케이던스는 극단적 파이프라이닝(Extreme Pipelining)을 통해 블록 생산 주기를 네트워크 지연과 무관하게 단축한다. 각 블록이 이전 블록을 참조하지 않는 독립된 합의 인스턴스에서 처리되기 때문에, 블록 간격이 네트워크 지연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 모나드 메인넷의 200개 검증자를 대상으로 한 시뮬레이션에서 100ms의 블록 간격 하에 트랜잭션은 평균 50ms 만에 제안에 포함되었고, 완결(finalization)까지는 평균 219ms, 추측적 최종성(speculative finality)까지는 167ms가 소요되었다.
- 솔라나의 컨스텔레이션(Constellation)이 합의 프로토콜 알펜글로우(Alpenglow) 위에 복수 제안자 구조를 전처리기로 얹는 접근이라면, 모나드의 케이던스는 합의를 백지에서 다시 설계하는 접근을 채택했다. 두 접근의 차이는 결국 추가 통신 라운드를 거칠 것인가의 문제로 수렴한다.
- 복수 제안자 구조와 암호화 멤풀의 결합은 MEV를 경매로 시장화해온 이더리움의 경로와 달리, MEV가 성립하는 전제 조건인 독점과 정보 비대칭 자체를 프로토콜 수준에서 제거하려는 시도다. 케이던스가 실제로 배치된다면 리더의 순서 결정권을 경매로 재판매해 스테이킹 수익률에 얹어온 모나드의 MEV 결합형 리퀴드 스테이킹 모델은 향방이 불확실해진다. 리퀴드 스테이킹의 초과 수익은 사적 경매 수익에서 공개된 수수료 수익으로 재구성될 것이고, 잔여 순서 정책을 둘러싼 경쟁의 무대는 프로토콜 레벨에서 애플리케이션 레벨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1. 단일 리더 구조의 문제
오늘날 운영 중인 거의 모든 블록체인은 매 블록마다 하나의 주체에게 전권을 부여한다. 블록 생성 과정에서 리더로 지명된 검증자는 어떤 트랜잭션을 블록에 넣을지, 무엇을 뺄지, 그리고 어떤 순서로 배열할지를 홀로 결정한다. 물론 대부분의 프로토콜은 이 역할을 블록마다 돌아가며 맡기는 리더 순환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이는 권력을 시간적으로 분산시킬 뿐이며 해당 블록에 한해서는 리더가 완전한 독점 권한을 갖는다는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이 짧은 시간의 독점이 왜 문제가 될까? 리더는 아직 처리되지 않은 모든 트랜잭션을 남들보다 먼저 들여다볼 수 있다. 예컨대 누군가의 대량 매수 주문을 발견하면, 자신의 매수 주문을 그 앞에 끼워 넣어 가격을 끌어올린 뒤 곧바로 뒤에서 되팔아 차익을 챙길 수 있다. 이처럼 블록을 구성하는 권한을 이용해 남들보다 먼저 보고, 먼저 배치함으로써 뽑아낼 수 있는 이익을 통칭해 최대 추출 가능 가치(MEV)라고 부른다. 단일 리더 구조는 샌드위치 공격, 타이밍 게임 등 이 문제(혹은 수익처)의 구조적 원인이 되어왔다.

Source: Monad
지난 7월 2일, 모나드(Monad)의 핵심 개발사인 카테고리 랩스가 이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답으로 케이던스(Cadence)라는 새로운 합의 프로토콜을 공개했다. 논문과 함께 상호작용 가능한 튜토리얼이 공개되었으며, 본 글은 이 둘을 참고해 작성되었다.

Source: Category Labs
케이던스의 요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복수의 검증자가 동시에 블록 내용을 제안하는 복수 동시 제안자 구조를 채택하면서도 단일 리더 합의의 최적 지연을 그대로 유지하고, 블록 간격은 네트워크 지연과 무관하게 임의로 짧게 설정할 수 있으며, 자체 암호화 멤풀 설계인 BTX와 결합하면 MEV를 프로토콜 수준에서 해결하는 데에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룬다는 것이다.
복수 동시 제안자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솔라나 진영은 수년 전부터 이를 로드맵의 종착점으로 공언해왔고, 올해 3월에는 안자(Anza)가 컨스텔레이션이라는 구체적인 설계를 내놓았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목표를 향하는 설계들이 서로 완전히 다른 구조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 글에서는 케이던스가 어떤 구조로 이 문제를 풀었는지 논문을 기반으로 자세히 살펴보고, 컨스텔레이션을 비롯한 다른 설계들과의 비교를 통해 이 경쟁이 무엇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지를 논해보도록 하겠다.
2. 케이던스의 구조 살펴보기
2.1 케이던스의 문제의식
케이던스의 백서는 온체인 금융시장을 잘 서비스하기 위해 합의 레이어가 갖추어야 할 요건을 세 가지로 정리하며 시작한다.
- 제안자 독점의 제거
- 낮은 지연 시간
- 짧은 경제적 틱(Economic Tick). 트랜잭션이 어떤 제안에든 포함될 수 있는 최소 주기
경제적 틱이 짧아질수록 오라클 가격 갱신이나 마켓메이커의 호가 취소 같은 상태 갱신이 더 촘촘한 주기로 이루어질 수 있고, 이는 곧 탈중앙화 거래소에서의 차익거래 손실 축소로 이어진다.

Source: eprint
이 중 첫 번째 요건과 관련하여, 복수 제안자 설계가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두 가지 성질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 성질들은 a16z crypto 연구진이 참여한 2025년 9월의 논문 'Multiple Concurrent Proposers: Why and How'에서 제안된 것으로, 케이던스 역시 이 정의를 따른다.
- 선택적 검열 저항성(Selective Censorship Resistance): 제안자가 특정 트랜잭션만 골라서 지연시킬 수 없어야 한다.
- 은닉(Hiding): 각 제안자의 제안 내용은 다른 제안자가 그것을 보고 자신의 제안을 수정할 수 없는 시점까지 감춰져 있어야 한다. 은닉이 없다면 악의적 제안자는 정직한 제안자의 제안을 엿본 뒤 유리할 때만 반응하는 역선택을 수행할 수 있고, 복수 제안자 구조의 취지는 무력화된다.
케이던스는 검열 저항성 측면에서 단기 검열 저항성(Short-term Censorship Resistance)으로 보다 트레이딩적 관점에서의 속성을 채택했는데, 이는 정직한 제안자가 포함시킨 트랜잭션은 해당 블록에서 탈락하거나 뒤 블록으로 밀려날 수 없어야 한다는, 슬롯 단위의 검열 보장을 뜻한다. 이러한 정의는 블록 제안자 독점을 이용해 특정 트랜잭션의 포함을 짧은 시간 지연시키는 것만으로도 이득을 취할 수 있으며, '언젠가는 포함된다'는 통상적인 검열 저항성이 트레이딩의 맥락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을 겨냥하고 있다.
케이던스는 또한 기존 복수 제안자 설계들의 문제로 비용을 든다. 최근 제안된 대부분의 복수 제안자 설계들은 본 합의에 앞서 별도의 '제안과 집계' 단계를 둔다. 각 제안이 먼저 정족수의 증인들에게 확인받고, 이 확인 기록이 블록을 조립하는 리더의 재량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 구조는 기존 합의를 그대로 재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블록마다 두 번의 통신 라운드를 추가로 거쳐야 한다. 케이던스의 출발점은 집계 단계를 따로 두는 대신 복수의 제안자를 합의 그 자체에 집어 이러한 추가 비용을 지출하지 않겠다는 데에 있다.
2.2 극단적 파이프라이닝: 독립된 인스턴스 구조를 통한 병목의 재정의
케이던스는 노드 간 동기화된 시계를 전제로 시간을 균등한 슬롯으로 나누고, 각 슬롯이 정확히 하나의 블록을 원장에 기여하도록 한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구조이지만, 케이던스에서 각 슬롯의 블록은 이전 블록을 전혀 참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갖는다. 모든 슬롯은 각자의 독립된 단일 합의 인스턴스에서 처리되며, 어떤 슬롯도 앞선 슬롯의 종결과 브로드캐스팅을 기다리지 않는다. 논문은 이를 극단적 파이프라이닝(Extreme Pipelining)이라 명명했다.
이것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려면 기존의 파이프라이닝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블록 간격을 줄이는 전통적인 방법은 연속된 블록들의 합의를 겹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핫스터프(HotStuff) 계열이나 모나드BFT(MonadBFT) 같은 파이프라인 프로토콜들은 다음 블록은 이전 블록의 정족수 인증서를 입력으로 요구하며, 이전 제안이 전파되기 전에는 다음 제안을 시작할 수 없도록 했다. 다음 리더가 이전 제안 없이 블록을 만들 수 있게 한 낙관적 설계들도 블록 간격의 하한을 네트워크 지연 아래로 끌어내리지는 못한다. 결국 블록들이 앞뒤로 사슬처럼 엮여 있는 한, 블록 간격의 병목은 언제나 네트워크의 물리적 지연에 있게 된다.
반면 케이던스는 새 슬롯을 여는 데에 이전 슬롯의 어떤 산출물도 필요하지 않으므로, 슬롯은 오직 전역 시계가 정하는 일정에 따라 열리게 된다. 블록 간격은 네트워크 지연이 아니라 프로토콜 파라미터가 되며, 원한다면 임의로 짧게 설정할 수 있다. 카테고리 랩스가 제시한 초기 목표치는 100ms로, 이 경우 트랜잭션은 평균 50ms만 기다리면 어떤 제안에든 포함된다. 느리거나 멈춘 슬롯이 있어도 다른 슬롯들의 생산은 계속되고, 블록의 완결이 순서와 어긋나게 일어나더라도 블록들은 슬롯 번호 순으로 버퍼링되어 원장에 추가되므로 원장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카테고리 랩스 측의 주장이다.
복수의 제안자가 함께 시작하는 구조에서는 가장 느린 제안자가 전체의 페이스를 정하게 된다. 케이던스는 대신 슬롯마다 모든 검증자가 공유하는 하나의 마감 시각을 정해두고, 그 시각까지 제안이 도착하기만 하면 되도록 했다. 각 제안자는 자신의 네트워크 상태에 맞춰 전송 시점을 스스로 정한다. 잘 연결된 제안자는 마감 직전까지 기다렸다가 더 신선한 트랜잭션을 담을 수 있고, 원거리의 제안자는 일찍 전송하면 되는 것이다.
2.3 코러스: 고속 경로 기반의 단일 슬롯 합의 프로토콜
각 슬롯 내부에서 실제 합의를 수행하는 것은 코러스(Chorus)라는 단일 슬롯 합의 프로토콜이다. 코러스는 전체 검증자의 3분의 1 미만이 악의적이더라도 안전하게 동작하는, BFT 합의의 표준적인 내결함성을 갖추고 있다. 논문에서는 이를 기존 단일 리더 합의의 구조에 리더 자리를 동시에 여러개 만든 형태로 묘사했다.
제안이 전파되는 방식부터 살펴보자. 각 제안자는 자신의 제안을 먼저 슬롯 단위 임계값 암호화(Threshold Encryption)로 암호화한다. 임계값 암호화란 열쇠를 여러 조각으로 나눠 참여자들이 나눠 갖고, 일정 수 이상의 조각이 모여야만 복호화가 가능하게 하는 암호화 방식이다.
이어서 이 암호문을 이레이저 코딩(Erasure Coding), 즉 데이터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되 그중 일부만 있어도 원본을 복원할 수 있게 하는 기술로 분할한 뒤, 조각 전체에 대한 하나의 암호학적 지문(머클 루트)을 만들어 봉인하고, 검증자들에게 조각 단위로 뿌린다. 검증자들은 제안 원문이 아닌 이 지문에 대한 투표를 수행한다. 덕분에 데이터 전파와 합의가 병렬로 진행될 수 있고, 큰 제안이라도 합의의 지연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전파 방식은 현재 모나드에 배포되고 있는 결정론적 랩터캐스트(Deterministic RaptorCast)를 그대로 활용한다.

Source: Category Labs
고속 경로(Fast Path)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슬롯의 마감 시각이 되면 각 검증자는 제안자별로 하나씩 투표를 던진다. 해당 제안자의 유효한 조각을 받았다면 찬성, 받지 못했다면 반대를 투표해야한다. 어떤 제안자에 대해 전체 3분의 2가 넘는 일치하는 투표가 모이면 그 제안자의 포함 여부는 확정되고, 모든 제안자에 대해 정족수가 형성되면 검증자는 제안자별 항목을 담은 '메타 블록'을 조립해 여기에 커밋 투표를 던진다. 다시 3분의 2가 넘는 커밋 투표가 모이면 슬롯은 완결된다. 제안 전파 한 번과 투표 두 번, 총 세 번의 통신 라운드로, 이는 이론적으로 증명된 최적치이자 단일 리더 합의와 동일한 수치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제안자에 대한 처리다. 단순한 설계라면 제안자 다섯 중 하나만 꺼져 있어도 고속 경로가 막히겠지만, 코러스의 검증자들은 명시적인 반대 투표를 던지기 때문에 완전히 침묵한 제안자는 정족수의 반대 투표와 함께 제외되고, 슬롯은 고속 경로를 유지한다. 고속 경로가 막히는 경우는 어떤 제안자가 일부 검증자에게만 제안을 전달하는 부분 전파를 하거나, 서로 다른 제안을 보내는 이중 제안을 할 때 뿐이며, 이때는 별도의 대체 경로(Fallback Path)가 기성 합의 프로토콜을 블랙박스로 활용해 슬롯을 마무리한다.
코러스는 여기에 더해 모나드BFT와 유사한 추측적 완결성(Speculative Finality)을 제공한다. 검증자는 두 번째 투표 라운드를 기다리지 않고 메타 블록을 조립한 시점, 즉 한 라운드 먼저 블록을 추측적으로 완결할 수 있으며, 이 결과가 번복되는 것은 어떤 검증자가 이중 투표를 했다는 사실이 암호학적으로 증명되는 경우뿐이다. 명백히 고의적인 트롤링이 아니면 뒤집히지 않는 완결성인 셈이다.
은닉은 임계값 암호화가 담당한다. 제안은 암호화된 채로 전파되고, 검증자들은 마감 시각에 첫 라운드 투표와 함께 각자의 열쇠 조각(복호화 지분)을 공개한다.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 지분이 모여야 비로소 제안이 복호화되므로, 어떤 제안자도 다른 제안의 내용을 보고 자신의 제안을 만들 수 없다. 복호화 지분과 데이터 조각이 모두 투표 메시지에 실려 다니기 때문에 제안 복원은 별도의 라운드를 소모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책임 추궁의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부분 전파로 고속 경로를 무너뜨린 제안자는, 악의적 검증자가 전체의 약 6분의 1 이하라는 가정 하에, 찬성과 반대가 갈린 서명된 투표들 자체가 전달 가능한 증거가 되어 지목되고 처벌될 수 있다. 이는 마감 직전까지 전송을 미루는 타이밍 게임을 억제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2.4 컨덕터: 슬롯의 스케줄링을 위한 오케스트레이터

Source: Category Labs
슬롯들이 서로 독립적이라는 말은 곧 네트워크가 불안정할 때 열려 있는 슬롯이 무한정 쌓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완결이 멈춘 상태에서 새 슬롯이 100ms마다 계속 열린다면 검증자의 메모리와 연산 부담은 한없이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담당하는 것이 슬롯의 일정을 관리하는 오케스트레이터인 컨덕터(Conductor)다.
컨덕터는 슬롯을 W개 단위의 창(Window)으로 묶고, 이전 창들이 모두 완료되고 현재 창의 앞쪽 p개 슬롯이 완료되었을 때에만 다음 창을 연다. 이로써 한 검증자가 동시에 다루는 슬롯의 수는 최대 2W - p개로 묶인다. 다음 창의 첫 마감 시각은 검증자들이 각자 제안한 시각들을 합의로 모은 뒤 그 중앙값을 취해 정하는데, 중앙값을 쓰기 때문에 비잔틴 검증자들이 일정을 정직한 제안 범위 밖으로 끌고 갈 수 없다. 네트워크가 건강할 때에는 창과 창 사이에 틈 없이 정확히 블록 간격만큼의 박자가 유지되고, 불안정할 때에는 박자가 자동으로 느려졌다가 안정화 후 복구된다. 프로토콜의 이름이 케이던스, 즉 '박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2.5 블록의 번역, 그리고 암호화된 멤풀과의 통합
케이던스가 합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암호화된 제안들의 조각들이며, 블록에는 부모 참조도, 실행된 상태에 대한 커밋도 없다. 전통적인 블록체인이 당연하게 의존해온 장치들이 사라진 셈이므로, 논문은 이를 복원하는 방법을 함께 제시한다.
우선 케이던스는 실행이 합의를 뒤따라가는 모나드의 비동기 실행 메커니즘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합의가 확정한 메타 블록은 번역(Translation)이라는 결정론적 단계를 거쳐 실제 실행 블록으로 변환되는데, 이 단계에서 무효 트랜잭션이 걸러지고, 여러 제안자가 중복으로 포함시킨 트랜잭션은 하나만 남으며, 남은 트랜잭션들이 예컨대 우선순위 수수료 순으로 정렬된다.
제안자는 자신이 어떤 상태를 기준으로 트랜잭션을 검증했는지 증명하기 위해 일정 슬롯 이전의 실행 인증서를 티켓으로 첨부해야 하며, 이 장치가 제안이 인증된 실행보다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것을 막는다. 부모 참조가 없어 끊어진 체인의 연결성은, 합의의 임계 경로 밖에서 발급되는 인증서(커밋된 이력에 대한 체인 인증서와 실행 상태에 대한 실행 인증서)가 복원하여 라이트 클라이언트나 브릿지가 활용할 수 있게 한다.

Source: Category Labs
마지막으로, 케이던스는 카테고리 랩스가 설계한 배치 임계값 암호화 기법 BTX와의 결합을 전제로 설계되고 있다. 코러스의 은닉은 제안자들 사이의 문제, 즉 제안자가 서로의 제안을 엿보는 것을 막는 장치이며, 사용자가 제출한 트랜잭션을 제안자 본인이 들여다보는 것까지 막아주지는 못한다. 사용자가 트랜잭션을 암호화한 채로 제출하고 순서가 확정된 뒤에야 복호화되는 암호화 멤풀(Encrypted Mempool)이 이 빈틈을 메우는데, 이때 BTX가 활용된다.
정리하면 모나드의 MEV 대응은 세 개의 레이어로 분리된다. 1) 케이던스는 합의 레이어에서 독점과 제안자 간 정보 비대칭을 제거한다. 2) BTX는 멤풀 레이어에서 사용자와 제안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을 제거한다. 3) 마지막으로 병합된 트랜잭션들의 수수료 처리 메커니즘은 케이던스 논문이 명시적으로 범위 밖에 남겨둔 영역으로, 번역 단계와 수수료 메커니즘의 별도 설계에 위임되어 있다. 논문에서는 우선순위 수수료 정렬을 예시로만 언급하고 있으며, 케이던스의 MEV 서사가 완결되기 위해서는 이 세 번째 레이어의 공개를 기다려야 한다.
3. 다른 복수 제안자 설계들과의 비교
3.1 모두가 바라보는 방향
복수 동시 제안자는 2026년 들어 갑자기 등장한 개념이 아니다. 솔라나는 2023년부터 슬롯당 복수 리더를 로드맵의 목표로 공언해왔다. 싱가포르에서 발생한 사건의 정보가 뉴욕의 거래소에 도달하기도 전에 싱가포르의 블록 생산자를 통해 이미 체인에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는, 이른바 글로벌 가격 발견 엔진의 비전이 그 배경에 있었다. 2025년에는 안자가 '탈중앙화 나스닥으로 가는 길'이라는 글에서 마켓메이커의 호가 취소 경쟁 문제를 단일 리더 구조의 필연적 귀결로 진단하며 복수 리더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고, 같은 해 9월 a16z 크립토 연구진의 논문이 단기 검열 저항성과 은닉이라는 형태로 문제를 학술적으로 정식화했다.
그리고 2026년, 설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3월에는 안자의 컨스텔레이션이, 비슷한 시기에 서클(Circle)의 레이어1 아크(Arc)를 위한 AMP와 앱토스 연구진의 프리픽스 컨센서스(Prefix Consensus)가 공개되었고, 7월에는 세이(Sei)의 기가(Giga) 백서 2판이 발표되었다. 이처럼 단일 리더 독점의 해체는 사실상 온체인 트레이딩을 위한 인프라로써의 업계 공통의 설계 목표가 되어가고 있다.
3.2 컨스텔레이션

Source: Four Pillars
케이던스의 가장 직접적인 비교 대상은 솔라나의 컨스텔레이션이다. 컨스텔레이션은 솔라나의 차세대 합의인 알펜글로우 위에 얹히는 전처리기로 설계되었다. 복수의 제안자가 트랜잭션 묶음을 증인(Attester) 집단에 전파하면, 증인들의 확인 기록이 블록을 최종 조립하는 리더의 재량을 구속하는 구조다. 일정 지분 이상의 증인이 확인한 트랜잭션은 리더가 반드시 포함해야 하므로, 리더가 존재함에도 리더의 독점은 해체된다.
두 설계의 차이는 세 가지 축에서 발생한다.
- 지연: 컨스텔레이션은 알펜글로우 합의 위에 별도 단계로 얹히기 때문에, 완결에 두 번의 통신 라운드가 추가된다. 케이던스는 제안자들을 합의 안에 내장함으로써 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 경제적 틱의 성격: 컨스텔레이션은 사이클(Cycle)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약 400ms의 슬롯 안에서 50ms 주기의 경제적 틱을 만든다. 슬롯마다 여러 번의 '제안, 확인, 조립'이 반복되는 구조로, 합의 자체는 슬롯당 한 번만 돌기 때문에 메시지 비용이 절약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트랜잭션의 완결은 여전히 슬롯 단위로만 일어나므로, 사이클은 상태 갱신의 주기를 좁힐 뿐 사용자가 체감하는 종단 간 지연을 줄이지는 못한다. 반면 케이던스의 극단적 파이프라이닝은 블록 간격 자체를 100ms로 낮추는 것이므로, 경제적 틱과 블록의 완결이 같은 박자로 움직인다. 케이던스 논문 또한 사이클을 자신들의 확장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사이클이 극단적 파이프라이닝의 대체재가 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 검열 보장의 강도: 컨스텔레이션이 제공하는 것은 증인의 확인을 받은 트랜잭션에 대한 선택적 검열 저항성이며, 케이던스 논문 기준으로 프로토콜에 은닉이 내장된 설계는 아니다. 케이던스는 유예기간 이후의 모든 슬롯에 대해 단기 검열 저항성을 보장하고 은닉을 임계값 암호화로 프로토콜에 내장했다.
솔라나는 알펜글로우라는 대규모 합의 교체를 이미 진행 중이며, 그 위에 복수 제안자까지 얹는 작업은 SIMD라는 거버넌스 절차와 방대한 기존 인프라, 그리고 커뮤니티 논쟁을 통과해야 한다. 따라서 검증된 합의를 건드리지 않고 그 위에 레이어를 얹는 것은 이 제약 하에서의 최선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반면 케이던스는 자체 합의 스택을 온전히 소유한 체인의 개발사가 그리고 있는 설계이기에, 두 설계의 차이는 기술적 우열 이전에 각자가 처한 조건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생각된다.
3.3 세이 기가: 처리량형 복수 제안자의 수렴

Source: Sei
케이던스 발표 바로 전날인 7월 1일, 세이 또한 새 합의 프로토콜 세이 기가의 백서 2판을 공개했다. 세이는 2025년 5월의 백서 1판부터 스스로를 최초의 복수 제안자 EVM 레이어1로 규정하며 아우토반(Autobahn) 합의를 채택해왔으므로, 이 둘은 매우 좋은 비교 사례가 된다.

Source: Sei
아우토반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모든 검증자가 각자의 레인(Lane)에서 트랜잭션 배치를 연쇄적으로 계속 전파하고, 각 배치는 가용성 증명을 받는다. 합의는 개별 블록 단위가 아니라, 리더가 주기적으로 모든 레인의 최신 인증된 끝단을 모아 자르는 '팁 컷(Tip Cut)' 단위로 이루어지며, 하나의 팁 컷이 커밋되면 그 안에 참조된 각 레인의 이력 전체가 한 번에 확정된다.
다만 같은 복수 제안자 구조라도, 아우토반은 케이던스와 정반대의 목적을 갖는다. 아우토반의 레인들은 서로 다른 트랜잭션을 나눠 나른다. 트랜잭션은 멤풀 없이 접수 단계에서 검증자에게 배정되고, 검증자 수만큼 전파 파이프가 늘어나므로 네트워크 전체의 대역폭이 합산된다. 즉 아우토반의 복수 제안자는 처리량을 위한 수평 확장 장치다. 반면 케이던스의 복수 제안자는 같은 슬롯에 겹칠 수 있는 제안들을 의도적으로 중복 생산하고, 그 중복이라는 비용을 검열 저항성과 은닉의 대가로 지불하는 공정성 장치다. 합의 프로토콜의 복수 제안자에 대한 담론은 사실상 이 두 갈래, 즉 대역폭 합산형과 독점 해체형으로 나뉘어 있으며, 세이는 나왈(Narwhal)과 DAG 계열이 속한 전자의 혈통에서 출발된 프로토콜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세이가 후자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우토반 또한 공정성 요소를 갖추고 있는데, 사용자는 검열 저항을 위해 여러 검증자에게 트랜잭션을 중복 제출할 수 있고, 중복 중 하나만 실행되면 팁의 일부를 환급받는다. 정족수의 확인을 받은 제안을 올바른 리더가 이후의 팁 컷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포함 보장도 있고, 블록 보상을 특정 생산자가 아닌 검증자 전체에 균등하게 배분해 제안자 지대를 구조적으로 줄여둔 것도 같은 방향이다. 최근 발표된 백서 2판에서는 세드나(Sedna)라는 요소가 추가되었는데, 이는 복수 제안자 체인 특유의 MEV 위험에 대응하는 실행 전 프라이버시 장치로, 트랜잭션을 여러 레인에 조각내 뿌리고 완결성 확보 이후에만 재조립함으로써 암호화 멤풀이나 임계값 복호화 없이 은닉에 준하는 효과를 내겠다는 접근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세이의 경우 레인이 아무리 많아도 팁 컷을 자르는 것은 여전히 단일 리더의 몫이며, 리더는 어느 레인의 어떤 끝단까지 포함할지에 대한 재량을 갖고 있다. 따라서 세이가 보장하는 것은 해당 블록에서의 탈락과 유예 자체를 금지하는 모나드의 단기 검열 저항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3.4 AMP, 프리픽스 컨센서스, 그리고 DAG
솔라나와 세이 외에도 최근 등장한 고성능 체인들 중 복수 제안자 기반 합의 메커니즘을 도입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AMP는 텐더민트(Tendermint) 합의 위에 얹히는 복수 제안자 레이어로, 써클의 아크(Arc)가 도입한 합의 메커니즘이다. 제안자들이 트랜잭션 페이로드를 전파하면 검증자들이 투표 확장에 그 식별자를 실어 리더가 포함해야 할 페이로드를 구속하는 구조로, 컨스텔레이션과 마찬가지로 전파와 합의의 분리로 인해 두 번의 추가 통신 라운드를 지불한다. 핵심은 모든 정직한 검증자가 확인한 페이로드가 다음 높이의 블록에 강제 포함된다는 것이며, 은닉은 추가 가능 요소로만 언급된다.
프리픽스 합의(Prefix Consensus)는 리더 없는 복수 제안자 기반 합의 프로토콜로, 케이던스의 고속 경로에 준하는 낮은 지연시간을 달성한다. 다만 프리픽스 합의는 검열 저항성에 대해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프리픽스 합의의 경우 네트워크 안정화 이후에도 최대 f개의 슬롯에서 검열 저항성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임의 시점의 슬롯이 선택적으로 검열될 수 있다. 트레이딩의 맥락에서 공격자가 원하는 순간에 검열이 가능하다는 것은 작지 않은 차이다.
그 외에도 DAG 기반 프로토콜들은 매 라운드 모든 검증자가 제안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복수 제안자 구조를 갖지만, 목표하는 성질이 다르다. DAG 구조에서는 자신의 제안을 다른 제안들 위에 조건부로 쌓는 것이 오히려 유리할 수 있어 은닉과 상충하며, 단기 검열 저항성을 추가하려면 좋은 경우에 네트워크 속도로 커밋하는 낙관적 반응성을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논문 또한 설명을 덧붙였다.
4. 모나드의 MEV 생태계에 미칠 영향
케이던스가 언제 모나드 메인넷에 통합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가장 먼저 압력을 받게 될 것은 모나드 위에 이미 형성되고 있는 MEV 시장, 그중에서도 MEV 수익을 상품의 핵심으로 내세워온 리퀴드 스테이킹(Liquid Staking) 프로토콜들이다. 이 절에서는 현재의 구조를 먼저 정리하고, 케이던스와 BTX가 설계대로 배치될 경우 어떤 결과가 발생할 수 있을지 논해보겠다.
4.1 MEV 기반의 리퀴드 스테이킹 프로토콜들
모나드의 리퀴드 스테이킹 시장은 출발부터 MEV와 결합된 형태로 설계되었다. 대표적인 두 프로토콜을 보자.

Source: Fastlane
패스트레인(FastLane)의 shMON은 트랜잭션 순서를 서처(Searcher)에게 경매로 판매하는 사이드카(Sidecar) 경매를 운영해 그 수익을 shMON의 수익률에 편입시키며, 자사 집계 기준으로 모나드 검증자 198곳 중 118곳이 이 경매를 경유하고 있다. 여기에 체인링크(Chainlink)의 스마트 가치 재수취(SVR)를 통해 청산에서 발생하는 오라클 추출 가치(OEV)의 일부를 회수해 수익률에 더하고, 각 애플리케이션이 자신의 순서 규칙과 MEV 규칙을 직접 정의할 수 있게 하는 앱별 시퀀싱 프레임워크 아틀라스(Atlas)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Source: aPriori
에이프라이오리(aPriori)는 스스로를 'MEV 기반 리퀴드 스테이킹'으로 규정하는 프로토콜이다. 사용자가 MON을 예치하면 aprMON을 받고, 기본 스테이킹 보상 위에 에이프라이오리가 자체 블록 공간 경매로 수취한 MEV 수익이 분배된다. 서처들이 번들의 포함과 배치를 두고 입찰하면 검증자가 블록 공간을 판매하고, 그 수익이 스테이커에게 환류되는 구조다.
이들은 프로토콜이 리더에게 무상으로 부여한 순서 결정권이라는 자산에 프로토콜 바깥의 경매로 값을 매겨 재판매하고, 그 수익을 지분 보유자에게 돌려주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케이던스와 BTX가 설계대로 배치된다면 이 비즈니스 모델의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사이드카 경매가 파는 상품은 리더의 독점적 순서 결정권인데, 복수 제안자 구조는 그 독점 자체를 해체하기 때문이다. 다만 사이드카 경매가 '불가능해진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병합된 블록의 최종 정렬 규칙과 수수료 귀속은 별도의 번역, 그리고 수수료의 분배에 대한 규칙 체계의 설계에 위임된 미확정 영역이며, 그 설계가 정렬 재량을 얼마나 남기느냐에 따라 순서라는 상품의 잔존 가치가 결정된다. 확실한 것은 상품의 성격이 리더 한 명의 재량에 대한 사적 경매에서 공개된 규칙 하의 경쟁으로 바뀐다는 방향성이다.
4.2 남는 것: 수수료로의 회귀와 앱 수준의 트랜잭션 정렬
그렇다고 리퀴드 스테이킹의 초과 수익이 0으로 수렴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수익의 원천이 재구성된다.
변수는 순서 경쟁이 수수료 경매로 전환된 뒤 그 수수료가 누구에게 귀속되느냐다. 앞서 2.5절에서 지적했듯 케이던스 논문은 수수료 메커니즘을 명시적으로 범위 밖에 남겨두었다. 만약 안자의 구상처럼 정렬 수수료가 소각되거나 지분에 비례해 재분배된다면 스테이커가 누리던 MEV 프리미엄은 사실상 증발하고, 반대로 제안자에게 귀속된다면 프라이빗 경매의 수익이 투명한 수수료 수익으로 형태를 바꿔 슬롯당 다섯 명의 제안자에게 분산될 것이다. 따라서 리퀴드 스테이킹 프로토콜들 간의 경쟁은 커미션, 운영 품질, 디파이 통합과 같은 전통적인 기준을 통해 경쟁하는 형태로 되돌아갈 것이다.
반면 앱별 시퀀싱은 오히려 유효성이 커질 수 있다. 케이던스의 병합 규칙은 어디까지나 전역 기본값이며, 마켓메이커의 취소 주문을 우선하는 것과 같은 애플리케이션 고유의 순서 정책은 여전히 앱이 스스로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패스트레인의 무게중심은 사이드카 경매에서 아틀라스류의 실행 추상화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
5. 세 가지 시사점
5.1 합의 위에 얹을 것인가, 합의 안에 넣을 것인가
복수 제안자 설계 경쟁의 표면적인 쟁점은 지연, 검열 저항성, 은닉 같은 개별 성질들이지만, 그 아래에 놓인 구조적 선택은 하나로 수렴한다. 복수 제안자를 기존 합의 위에 별도 단계로 얹을 것인가, 아니면 합의 그 자체를 다시 쓸 것인가. 전자는 검증된 합의를 보존하고 배포의 현실성을 확보하는 대신 통신 라운드라는 세금을 매 블록 지불하고, 후자는 최적의 지연을 얻는 대신 합의 전체를 새로 증명하고 새로 구현해야 하는 부담을 진다.
이 구도는 낯설지 않다. 필자는 앞서 레이어제로의 제로 체인을 다룬 글에서 제로가 이더리움 로드맵을 바닥부터 재조립한 설계를 내놓은 것을 보며 '때로는 처음부터 다시 짓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다'고 논한 바 있는데, 케이던스와 컨스텔레이션의 대비는 정확히 같은 질문의 합의 레이어 버전이라고 생각된다.
자체 합의 스택을 소유하고 레거시가 얇은 쪽은 합의 설계 내에 직접 복수 제안자 설계를 넣을 수 있고, 거대한 기존 생태계와 거버넌스를 짊어진 쪽은 합의 프로토콜 위에 얹는 것이 합리적인 설계일 것이다. 복수 제안자라는 같은 목적지를 두고 각 체인이 택하는 경로는, 그 체인이 짊어진 역사의 무게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5.2 블록 간격, 물리 법칙에서 정책으로
극단적 파이프라이닝이 갖는 의미는 복수 제안자와는 별개로 음미할 가치가 있다. 지금까지 블록타임 경쟁은 본질적으로 네트워크 전파 지연과의 싸움이었고, 그래서 물리학이 정한 바닥이 있었다. 케이던스는 블록 간격과 완결성 지연을 서로 다른 두 개의 숫자로 분리해버린다. 완결에 219ms가 걸리더라도 블록은 100ms마다, 원한다면 그보다 짧게도 생성될 수 있다. 디스플레이에 비유하자면 주사율과 입력 지연이 분리된 것과 같다. 화면이 얼마나 자주 갱신되는가와 입력이 화면에 반영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가는 다른 문제이며, 트레이딩 인프라에서 전자는 경제적 틱, 후자는 최종화 지연에 해당한다.
이 분리가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다.
하나는 블록타임이라는 지표의 수명이 끝나간다는 것이다. 블록 간격이 프로토콜 파라미터가 되는 순간 그 숫자 자체는 자랑거리가 아니게 되며, 진짜 병목은 실행 속도, 상태 접근, 그리고 대역폭으로 이동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온체인 애플리케이션의 설계 전제가 바뀐다는 것이다. 오라클 가격, 청산, 경매가 100ms마다 갱신되는 환경은 400ms 단위의 환경과는 질적으로 다른 시장 미시구조를 만들 것이다.
5.3 MEV, 시장화에서 무력화로
끝으로, 4장에서 살펴본 모나드 생태계 차원의 재편이 결국 어떤 철학의 발현인지 큰 그림을 짚고 싶다.
MEV에 대한 이더리움의 지배적 대응은 제안자와 빌더의 분리(PBS)로 대표되는 시장화였다. MEV의 존재를 인정하고, 경매를 통해 추출을 전문화된 주체에게 위임하며, 수익을 재분배하는 접근이다. 반면 복수 제안자와 암호화 멤풀의 결합은 정반대의 철학 위에 서 있다. MEV가 성립하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블록 구성에 대한 독점, 그리고 남의 의도를 먼저 볼 수 있는 정보 비대칭이다. 복수 제안자는 전자를, 은닉과 암호화 멤풀은 후자를 프로토콜 수준에서 제거한다.
물론 이것이 MEV의 완전한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거래소 간 가격 차이에서 발생하는 차익거래처럼 시장 구조에서 비롯되는 가치는 프로토콜이 제거할 수 없다. 또한, 병합된 블록 내부의 순서는 여전히 수수료 경쟁의 대상이며, 그 경쟁의 규칙은 미공개된 수수료 시장의 설계가 정한다. 이와 더불어 은닉과 암호화는 의도를 관측하고 수행하는 MEV의 영역을 차단하는 것이므로, 통계적으로 샌드위치를 난사하는 블라인드 스팸은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없다.
단일 리더의 독점은 블록체인이 트레이딩 인프라를 자처하는 한 언젠가는 청산해야 할 부채였다. 현재는 그 청산의 방법론을 두고 각 진영의 답안지가 모두 제출된 상황이며, 케이던스는 그중 가장 급진적이면서도 가장 구체적인 답안 중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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